4/11/20~24 다즐링 최고
1.
다즐링은 해발 2300정도로 히말라야 초입부에 있는 산간 마을이다. 실리구리에서 택시를 타고 출발하면 15분 정도는 먼지나고 차많고 쓰레기 많은 ‘그냥인도’를 한참 지나서 10분정도는 키큰 나무의 숲 사이로 끝없이 펼쳐진 녹차밭의 아름다운 풍경 사이를 달리며 넋을 놓다가 은근히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되면 숲에서부터 이곳이 인도 육군의 군사지역이었다는걸 알게 된다. 그러고보니 숲 사이로큰 부대와, 군인아파트, 쇼핑센터등이 즐비해있었다. 그리고 도로에서 얼마 안떨어진곳에서 사격훈련이니 병기본 훈련같은걸 한다고 노란 흙으로만 이루어진 언덕에여기저기 서있는 인도 군인들을 보면 군대 있을때 생각이 나서 묘한 향수와 묘한 짜증이 같이 난다. 재밌는건 인도 군들은 직업군인이다보니 다들 스무살, 스물한살인건 아니고 수엽을 기른 병사나 터번(시크교도)을 쓰고 있기도 해서 사뭇 다르다는 거다. 한국에서 상황훈련같은거 받을때나 행군같은거 할때 모습을 보면 사실 최전방이나 특수부대를 제외한 한국군은 완전군장은 X반도 탄띠나 배낭이나 방독면 주머니 등등을 주렁주렁 달고 나면 장비 자체가 2차대전 미군들이 쓰던것과 거의 차이가 없는데(요즘은 바뀌어서 괜찮나 좀 나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평균신장이 작다 보니 작은 키에 산만한 배낭에 허리에는 불룩 튀어나온 탄띠 허벅지에 불룩 튀어나온 방독면까지 하면 제대로 걷기도 어려워 뒤뚱뒤뚱하는 귀여운 팽귄같은 느낌이 있다. 하지만 인
도군은 직업군인이고 군인이 되는것 자체가 인도에서 아주 좋은 직업에 속하고 좋은 대우를 받기 때문에 시험에 통과해야만 군인이 될 수 있고 경쟁도 치열하다. 그래서인도 군인이라고 하면 다들 좀 건장한 편이다. 물론 다들 배가 나왔다. 특히 항상 깔끔하게 터번을 쓰고 다니는 시크교도들은 힌두교도들과 달리 아마도 무를 숭상하여 운동을 많이 하고 몸이 건장한 사람들이 많은데 시크교의 문화상 한집에 한명 이상은 군인을 배출하는것이 전통이라고 하여 인도 군인들을 만나면 사실 거의 절반은 터번을 두르고 모자를 쓴 시크교도다. 시크교도들은 보통 피부색이 옅은 편이고 이목구비가 또렷해서 군복을 입고 있으면 꽤나 다들 멋있다. 그래서 인도 군인 하면 180 가까운 키에 터번을 두르고 수염끝이 멋들어지게 말려 올라가서 윗배부터 불룩 나와있는 시크교도를 생각하게 된다.
이래저래 사격훈련장을 지나면 급경사가 지그재그로 이어지고 마치 겹겹히 세워진 벽 처럼 첫번째 산을 넘으면 그 위에 또 다른 산, 또 다른산이 꼬불꼬불한 길로 이어져있고 거의 산의 꼭대기 근방으로 마을들이 형성되어있다. 다즐링에 다다
르기 전에도 7개 정도의 마을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올라가는 길은 그 옛날 영국이 건설했던 다즐링 협궤열차의 철로와 나란히 다즐링까지 닿게 되는데 폭 60cm에 불과한 이 좁은 철로 위를 천천히 다니는 증기기관차 는 뉴잘페구리~다즐링의 전체구간은 2012년에 운행이 중단되고 이제 다즐링 근방의 마을들만을 왕복하는 (대부분 체험목적으로) 구간만 운행되고 있다.
협궤열차의 종착역이자 산위의 도시 다즐링의 입구 다즐링 역에 마침내 내렸을때는 또 해가 어둑어둑 지고 있는 4시 무렵이었다. 타로상은 일본 가이드북에 나온 게스트하우스로 가자고 해서 다같이 찾아갔다. 시작부터 급격한 오르막이 나와서 다들 지친몸에 입을 다물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겨우 숙소를 찾았지만 꽤나 비쌌다. 한방에 600루피라는데 일인당 300루피씩 감당하기 힘들다. 이래저래 얘기끝에 더블 침대 두개가 있는 4인실을 하루 1000루피에 사용하기로 했다. 여전히 비싼 감이 있지만 방이 생각보다 너무 깔끔했고, 와이파이, 온수도 잘 갖춰져 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감기증세가 심해진 찬울이와 타로상은 감기가 나을때까지는 계속 방에서 쉬겠다고 해서 정탁이와 둘이서 시내를 잠깐 구경하러 나왔다. 이미 어둑어둑한 다즐링 시내를 가로질러 다즐링의 메인 광장 ‘초우라스타’로 갔다. 나는 이곳의 전통 술이라는 ‘뚱바’를 오늘 무조건 마셔보고 잘 작정이었다. 막걸리같다고 들은바다 있어서 술도 잘 안하는 정탁이를 꼬드겨서 나왔는데 뚱바를 파는 가게라고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핫 스티뮬레이팅 까페’는 시내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었다.
몇번 헤메면서도 느긋하게 걸어갔다. 구름은 우리 발 아래 있었고 생각보다 훨씬 큰 도시 다즐링은 구름위에 떠있는것 처럼 웅장하게 펼쳐져있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한컷처럼 안개속으로 19세기 유럽풍의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걸 보고 있으면 저 구름 사이로 금방이라도 거대한 비행선의 그림자가 다가올것 같은 신비함이 들었다. 맥그로드 간즈나 마날리에서도 그렇지만 해발 2000미터 부근, 설산이 보이지만 항상 눈이쌓여있지 않고 키큰 침엽수를 많이 볼 수 있는 히말라야 초입 지역의 산간도시는 건물들이 위태위태하면서도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데 대부분 땅을 파서 기초공사를 하기보다는 경사 아래쪽에 기둥을 세워 위쪽부터 1층으로 올려나간다. 경사가 가파르니까 건물 하나 하나 사이에 높이 차이가 많이 나고 그래서 어느 집에서나 막힘없이 멋진 경치를 감상 할 수 있다. 핫 스티뮬레이팅 까페 역시 언덕에서 기둥으로 받쳐지고 있는 작은 까페인데 우리가 도착했을때는 문을 닫고 있었다.
“Sorry Tungba is finished”
“Why! Why! Why! I walked so long way, It’s dark and cold, please please please! ”
모든 불을 끄고 가게 문을 닫고 있던 젊은 사장은 내가 막 떼를 쓰고 먹게 해달라고 하니까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쉿 하더니 모든 창문을 커튼으로 가리고 나서야 뚱바 두잔을 우리에게 가져다줬다. 마감시간에 현지인들이 와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너무 많이 마셔서 자기가 피곤해지기때문에 팔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는 맛을 볼 수 있었다. ‘뚱바’는 곡물로 빚어만든 술인데 사실 내가 기대했던 막걸리랑은 많이 달랐다. 쌀이 아니라 기장과 조 를 사용해서 발효해 놓은 것을 커다란 대나무 컵에 그대로 담아와서 뜨거운 물을 부운 다음 대나무 빨대로 마셨다. 신기하게도 곡물 알갱이가 빨대를 따라 전혀 들어오지는 않았다.
맛은 시고 쓰다. 그리고 못먹겠다…… 진짜 어지간한 술은 다 마셔봤지만 이건 정말 못먹겠다. 단거 싫어하는 내가 설탕을 달라고 해서 들이부었지만 조금도 맛이 변하지 않았다. 정탁이는 거의 한모금도 안마신 상태였다. 나는 물을 한번 더부어 어떻게든 다 마셔보려고 했지만 (그래도 꽤 많이 마신 거긴 했다) 정말 고역이었다. 이걸 어떻게 먹지. 주인은 우리옆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늦은시간에 이거 억지로 달라고 한것도 미안한데 다 못먹을것 같아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다고. 한국에서는 이걸 걸러서 물과 섞어서 마시는데 그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그런 음료는 “창”이라고 해서 따로 있단다. 아 그러니까 “창”이 우리 막걸리에 해당하는 거였고 ‘뚱바’는 술 찌깨미에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먹는 거였다. 내가 찾던건 창 이었던 것 같은데 창은 어디서 먹을 수 있냐니까 모르겠단다. 애초에 음주 자체를 엄청나게 즐기지 않는 곳인데다가 서양 술문화가 일찍 유입되고 발달되서 자체적으로 위스키 보드카 맥주등을 좋은 가격에 생산할 수 있는 인도인지라 딱히 전통 술을 고집하는 사람도 많이 없는것 같다.
날씨가 좋으면 이곳에서 뷰가 정말 좋겠다 언제 날씨가 좋아지겠냐 했더니 자기도 알 수 없단다. 근래 5일동안 흐렸는데 우리가 운이 좋으면 여기 있는동안 설산(칸첸중가)를 볼 수 있을거라 했다. 그러면서 다즐링
사람들은 3W를 믿지 마라고 한단다. Weather, Wine, Women.
2.
자려니 추웠다.
침낭은 예전에 팔아먹었기 때문에 옷을 껴입고 이불안에 들어가야했다. 레(LEH)의 구제시장에서 100루피에 산 청남방을 입고 위에 60루피에 샀던 made in korea 가디건을 입고, 목에는 버프를 하고 잠이들었다. 공기가 차가운데서 꽁꽁 싸매고 자는걸 나는 은근히 좋아한다. 이불이 좀 더 포근하고 두꺼워서 팬티에 티셔츠만 입고 들어가있다면 더 좋겠지만 이것도 괜찮다. 옥탑방에서 자취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특히 대흥동 49-1 . 제일 오래살았던 집인 만큼 정도 많이 들었었는데 그 집은 달동네 꼭대기에 있는 옥탑이라 문을 열고 나와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절벽위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학교부지에 속해있는 노고산으로 가는 산책로의 바로 입구앞에 있어서 문이 열려있을때는 X관까지 2분밖에 걸리지 않아서 항상 수업시작하기 직전에 집을 나서도 됐었다. 다산관 옥상과 눈이 마주치고 앞으로는 아현동의 달동네가 쫙 펼쳐져있고 멀리는 남산타워까지 보였다. 남산타워의 조명이 맑은날, 흐린날, 비오는날 각각 다른색으로 켜진다는 비밀이나 아현동 달동네에 빽빽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비추는 조명이 마치 별같아서 하늘보다 저기를 보는게 더 좋다 라는 등 집에 놀러온 여자들한테 종종 멋있어보이려 쓰는 몇가지 멘트가 준비되 있었다. 암튼 그때는 난방이라는걸 할 수가 없었다. 충분히 따뜻하려면 한달에 20만원 이상 가스비가 나왔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정성들여 만들어 보내주신 이불이 있어서 12월까지는 잘 때는 시원한 공기에 포근한 이불에 잘 맛이 났었는데 언제지 2012년~2013년 겨울이었던가 석연치 않은 선거때문인지 무척이나 추웠던 그해 겨울에는 오리털 침낭을 쓸 수밖에 없었다. 오리털 침낭 제대로 된거 쓰면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이런데서도 그냥 잘 수 있는거다 보니 기껏해야 영상 1~2도였던 내방에서는 홀딱벗고 들어가도 땀이 날 정도였다. 문제는 침낭안과 밖의 급격한 온도차이 때문에 침낭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거다. 그해 겨울은 그렇게 침낭안에 들어가 번데기처럼 지냈었다. 문득 그 침낭이 그리워진다.
3.
다음날 아침 혼자 일어나 길로 나왔다. 제법쌀쌀했지만 공기가 시원해서 좋았다. 가파른 골목길을따라 올라갔다가 완만한 길로 다시 내리막을 따라 걸었다. 인도에서 손에꼽는 휴양지답게 호텔, 롯지가 굉장히 많았다.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갔다. 다즐링이 제법 큰 도시기도 하지만 여러 인종이 살아서 그런지 학교 수도 많고(언어가 다르니까) 그래서 교복의 종류도 엄청나게 많다. 며칠동안 다즐링에서만 서울에서 본것보다 더 다양한 교복을 본것 같다. 여기는 초등학생들도 교복을 입으니까 상대적으로 더 그래보이나. 다즐링의 부모들은 아침이면 항상 손을 잡고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데 그게 참 다정하다. 멀어서 택시를 타더라도 꼭 부모중의 한명이 동반한다. 다즐링에는 인도본토의 아리아인들과과거 산악왕국이었던 시킴의 시킴족, 가까운나라 부탄 사람, 네팔리, 티베트 난민들까지 다양한 출신과 종교의 사람들이 산다. 시킴족이나 부탄 사람들은 사실 티벳 사람들과 구별하기가 쉽지는 않다 다들 동양인 얼굴이니까. 그런데 아마도 주를 이루는게 시킴족들인듯 한데 이사람들이 사실 지금까지 본 외국인들 중에서 가장 한국인에 가깝게 생긴 것 같다. 그리고 예쁘다. 평균 신장은 좀 작지만 눈코입이 또렷하고 예쁘게 생긴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이곳 유행인지 눈꺼풀을 완전 까맣게 칠하고 입술은 빨갛게 칠하는데 그 화장만 지우고 머릿결을 좀만 관리한다면 한국에서 완전 인기많을 것 같은 여자들이 높은 빈도로 목격된다. 그런 엄마들이 손을 잡고 학교에 데리고 가는 아기들은 정말 깜짝 놀랄만큼 예뻐서 길가다가 종종 멍하게 아기들을 바라보게 된다. 국제결혼을 꿈꾸는 한국남성이라면 베트남이나 우크라이나 말고 다즐링 시킴에서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듯! 하지만 여기는 또 그런게 될지 모르겠다. 이곳에는 인도 다른지역이나 티벳인들이 주가 되어 사는 맥그로드 간즈와 느낌이 또 다른데 가장 놀라운건 자유연애가 활발하다는것! 교복을 입은 아이들 중에서도 서로 팔짱을 끼고 다니는 아이들이 종종 있고, 놀러온 관광객들도 많겠지만 손잡고 다니는 커플들이 유난히 많다. 주로 부모가 정해준 결혼상대와 연애를 하다가 결혼하는 힌두교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인지 외모에 신경 쓰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여기도 투블럭이 유행인데 젊은 남자의 60%가 투블럭 컷이고 아니더라도 다들 저마다 굉장한 스타일들을 보유하고 있다. 여자들데 제법 세련되게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흠칫흠칫 한다. 동대문같은 짝퉁시장도 있어서 (짝퉁아니라고 하기는 하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유명브랜드 옷과 신발들도 쉽게 살 수 있다. 닥터마틴 부츠가 5000루피라서 살까 말까 진짜 고민했다. 5000루피면 우리돈 10만원이 넘는데 내가 알기로 닥터마틴 부츠가 15~20만원 사이일텐데 10만원을 주고 짝퉁인지 아닌지 모르는걸 사야되나? 근데 이가격이면 짝퉁이 아닌가? 광장시장에서 중고로 사도 8만원씩은 주는게 닥터마틴인데.
추운지방 사람들이 부지런해서 잘산다고 확실히 인도의 다른지역보다 전반적인 삶의 질이 높아보인다. 일단 세계 최고의 차 산지로서 수요가 끊기지 않는 차 농사가 계속되고 있고 벌써 추워지기 시작한 11월에도 그 많은 호텔에서 방을 구하기가 힘들만큼 관광객들도 많이 와서인지 노숙자나 구걸하는 사람도 많이 없고 (노숙하기엔 너무 추워서 그런가?) 무엇보다 교복입은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 인도에서는 4~5살때부터 아이들이 엽서를 팔거나 간단한 것들을 팔고 11살쯤 되면 식당에서 서빙을 하거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흔하게 보는데 이곳은 아동노동을 보기가 거의 힘들고 해도 부모의 일을 도와주는 정도지 다른데 고용되서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못봤다. 그리고 다음날 티베트 난민센터를 가기 위해 인근 마을길들을 따라 몇시간을 걸었는데 길에 나와서 구슬치기나 바람개비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인도 아이들도 종종 크리켓을 하기는 하지만 일단 나는 아이들이 뛰어노는것보다는 일하거나 구걸하는 아이들을 더 많이 본지라 다즐링의 이런 모습이 낯설면서도 마음이 편해서 보기 좋다.
한바퀴돌면서 초우라스타 광장 옆쪽으로 나있는 작은 로컬시장을 둘러보았다. 좁은 길을 따라 100미터 정도 나있는 시장에는 야채, 생선, 고기,잡화와 함께 볶음면, 꼬치구이, 튀김 등을 파는 노점들과 모모(티벳만두), 뚝바(티벳칼국수), 뗀뚝(티벳 수제비)등 티벳요리를 파는 작은 식당, 인도음식들을 파는 식당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가이드북에는 이쪽으로 가면 양곱창국밥 같은걸 먹을 수 있다고 쓰여있었다. 이곳에서는 쇠고기가 양고기나 닭고기 보다 쌌다. 네팔에서도 사실쇠고기가 싸다. 소를 시바신과 함께 여기는 인도에서 먹는 쇠고기는 버팔로(물소) 고기인데 무슬림들이 많은 도시에 가면 흔히 먹을 수 있고 티베탄이나 네팔리들이 있는 곳에서도 먹을 수 있다. 네팔에서는 아주 흔하게 먹을 수 있는게 버팔로 고기다. 인도가 또 워낙 넓은 나라인지라 버팔로보다는 안먹는 그냥 소가 훨씬 많지만 버팔로 고기만으로도 세계 쇠고기 수출 1,2위를 다툴 물량이 된다고 한다;; 암튼 이 버팔로는 종종 beef 라고 쓰기도 하지만 buff라고 좀 더 정확하게 쓰기도 한다. 인도에서 티벳지역을 한번도 안가본 정탁이에게 버프 모모의 맛을 보여주려고 작은 노점에서 서서 기다렸다. 20루피에 만두 8개 싸다. 근데 맛없다. 아 1차는 실패다 하고 다음에 뭐먹지 하다가 역시 양곱창국을 먹어보기로 하고 가게를 찾았다. 양곱창국은 이곳말로 ‘토파까쟈’인데 뭔뜻이냐면 양곱창국…… 생각보다 파는데가 별로 없다 다들 없단다. 어떻게 된거지 하고 돌아다니다가 커튼으로 문이 가려진 작은 식당유리에 한국어로 된 메뉴판이 적혀있는걸 봤다. “쵸키네! 제육덮밥, 밥 무한리필 150루피” 우와 제육덮밥이래, 아냐 일단은 토파까쟈 근데 저거 맛있겠다 물어나 볼까? 하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테이블하나. 꽉꽉들어가면 8명정도 들어갈법한 작은 식당에 두명의 여인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토파까쟈? “
“쏘리 투데이 노 토파까쟈, 투마로”
어 근데 벽에 한국어 메뉴 적혀있다. 쇠고기 뚝바 30루피, 치킨뚝바 40루피. 뭐가 이렇게 싸? 하는데 육개장 110루피!!! 육개장이라고? 뭔소리지 ?ㅋㅋㅋㅋ 일단 궁금해서 쇠고기 뚝바 하나와 육개장 하나를 달라고 했다. 이 식당은 그러니까 모모와 뚝바를 전문으로 하는 집인데 뚝바의 육수는 항상 끓고 있기 때문에 삶아놓은 국수에 국물을 끼얹고, 쇠고기 고명을 얹으면 쇠고기 뚝바, 양고기 고명을 얹으면 양고기 뚝바인거다. 근데 그 국물맛이 진짜 우리나라 육개장맛이다. 상가집에서 먹는 미원 팍팍들어간 육개장맛. 빨간 기름까지 동동 떠있어서 진짜 육개장 생각이 난다. 아마 여기서 뚝바를 먹은 어느 한국인이 아이디어를 줘서 만든 메뉴겠거니 한다. 둘이서 호호 하면서 뚝바를 싹 비우고 나자 육개장이 나왔는데 아개쒯진짜 이건 대박이다. 애기 주먹만한 쇠고기 덩어리 8개가 그릇가득한 밥위에 올라있고 밥은 빨간 육개장국물에 푹 담겨 있었는데 이건 진짜 그냥 장터국밥. 오히려 이제 한국에서는 찾아보기도 힘든 국밥의 비주얼이며 맛이다. 국물에 담긴 밥 자체를 먹는게 몇달만인지. 사진은 다음날 먹은 토파까쟈
둘다 말도 안하고 후아 후아 하면서 행복하게 밥을 먹었다. 국물도 더달라면 더준다. 사실 밥을 너무 꽉꽉 넣어줘서 국물맛 보려면 더달라고 해야만 한다. 어설프지만 직접담근 김치까지 꺼내주는데 감동. 다즐링 4일 있으면서 거기 한 5번 갔나 ㅋㅋㅋ 아 해피 행복 그래 이런거지. 너무나 행복한 한끼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멍하게 나와서 걸었다. 해가 떠서 날씨도 상쾌했다. 천천히 어젯밤에 갔던 핫 스티뮬레이팅까페 쪽으로 걸었다. 까페를 지나서 더 가면 다즐링 동물원과 히말라야등산학교가 있다. 까페를 지나다가 어젯밤 같이 이야기를 나눴던 까페 사장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했다.
과거에 영국 관리들을 위해 지어진듯한 별장같은 건물들이 몇개 지나고 숲사이로 큰 트럭한대 지나갈정도로 난 길을따라 한참 걸어가자 동물원이 나왔다. 동물원 이름은 까먹었는데 히말라얀 뭣이다
. 히말라야에 사는 동물들만을 모아놓은 동물원이다. 100루피 밖에 안하는데 생각보다 엄청나다. 사실 엄청나다. 다른 어떤 동물원에서도 보지 못했던 동물들이많이 있다. 눈표범,흑표범,구름표범(Cloud Leopard) , 그냥표범. 그리고 산양 종류가 많았는데 뿔이 꼬여서 위로 난 산양, 뿔이 뒤로 굽은 산양, 뿔이 거대하게 솓아있는 산양, 뿔이 뒤로가다가 앞으로 말린 산양, 음 그리고 레드 판다, 반달가슴곰, 늑대, 자칼, 그리고 얼굴은 상반신은 원앙이고 하반신은 꿩인 새 등등이 있었다.
표범을 보니까 어릴때 어머니랑 하던 놀이가 생각난다.
6살인가 4살인가 어머니가 “저~기 호랑이 한마리~” 하시면 내가 “어흥~”하고 어머니가 “저~기 염소 한마리~” 하시면 내가 “음메~” 이랬는데 어머니가 “저~기 표범 한마리~” 하시니까 내가 무척 자신없는 얼굴과 목소리로 “표범…” 이랬단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때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깔깔 웃으신다. 나는 표범을 생각할때마다 그 노래와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생각이 난다.
이곳 동물원은 언덕에 지어져 있는 탓에 관람객들이 많은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놨는데 괜찮은게 내가 지금까지 본 대부분의 동물원처럼 좁은 우리에 갇혀있는 동물이 쓸쓸하게 관람객들의 시선을 피해 짱박혀서 잠만 자고 있는게 아니라 다른곳에 비해 비교적 넓고 나무나 바위들도 콘크리트가 아닌 자연그대로를 이용해서 지어놓은 우리를 경사면 위의 언덕 위에서 관객들이 내려다보는 형태로 되어있다. 물론 육식동물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짱박혀서 잠을 자고 있지만 그래도 동물원에 갈때마다 애들이 불쌍해서 느껴지는 죄책감이 비교적 덜하고 애들이 짱박혀서 어지간하면 볼 수 있다. 아마 원래 야행성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끝없이 어슬렁거리며 많은 인기를 모았던 흑표범을 제외하고는 다들 자고 있었고 호랑이는 우리 자체가 넓어서 그런지 자고 있는 등짝만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신기한건 동물원의 동물들은 아무리 좁은 우리에서도 최대한 사람들 눈에 안띄는 장소를 찾아내고 그곳에 짱박힌다는 것이다. 그건 아마 언제까지고 갇혀있어야만 하는 놈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고 투쟁일 지도 모르겠다. 산양들은 별생각 없는듯 열심히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반면에 가슴에 반달무늬가 있는 곰녀석은 자기 영역이 엄청 넓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랑 침뱉으면 닿을 거리까지 내려와서 떡하니 앉아서는 사람들의 사진세례를 즐기고 있었다. 반달곰은 연신 긴 혀를 낼름거리며 자기 얼굴을 핥았는데 사람들이 딱히 먹이를 주거나 하지 않는데도 꽤 즐거운 눈치였다.
전에 베이징 동물원에 갔을때 느낀 거였는데 동물원에서도 불쌍하거나 비참하지 않은 동물들이 종종 있다. 거친 야생에서 좁아터진 공간에 갇힌 동물들이야 의욕을 상실하고 구석에 처박혀서 무기력하게 잠만 잘 뿐이지만 판다, 하마 이런애들은 완전 행복해보인다. 특히 판다는 남들이 아무도 안먹는 대나무를 소화할수 있도록 진화하여 독자적인 식단을 구축하면서 남들과 경쟁할 필요도 없이 독점자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대나무같이 영양가 별로없이 대부분 섬유질로 이루어진 식단을 유지하다 보면 먹는양과 싸는 양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얻는 에너지는 얼마 안되서 하루의 대부분을 먹는데 시간을 보내고 열량을 보존하기 위해 별로 안움직이게 된다. 이렇게 동물원에 최적화된 최강의 관상용생명체가 탄생하게 되는데 베이징동물원에서 본 자이언트 판다도 사람들이 보던 사진을 찍건 소리를 지르건 무아지경으로 대나무를 씹을 뿐이었다. 하마도 마찬가지. 그 엄청난 덩치에 우리가 경악을 금치못하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웃고있는 20분가까운 시간동안 진짜 내쪽한번 쳐다보지도 않고 거대한 머리를 움직이며 풀을 씹고 있었다. 여기 다즐링 동물원에는 레드판다 라고 하는 너구리같이 생긴 극단적으로 귀여운 짐승이 있었는데 동글동글 귀여워서 진짜 너구리 포장지에 그려진 너구리같이 생겼지만 느릿느릿 걷는 폼은 영락없이 판다였다.
모두가 바라는 가치를 똑같이 지향하기 보다는 남들이 관심도 주지 않던 것의 가치를 발견해내고 독점함으로서 평생 부족함없는 삶을 누리며 심지어 자유가 박탈당한 상태에서도 자신의 행복을 빼앗기지 않는 판다의 자세. 획일화된 가치만을 추구하느라 극단적 경쟁사회에서 버거워하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모두 판다가 되자.
4.
동물원갔다와서 방에서 좀 쉬다가 문득 내가가진 옷이 전부 얇은 옷이나 반바지 뿐인데 지금 겨울인 아일랜드에 가면 춥겠단 생각이들었다. 여기 큰 쇼핑몰도 있고 기념품점도 몇군데 있으니 다니다가 따뜻한바지라도 물가싼 인도에서 마련해가야겠다 싶어서 혼자 기웃기웃했다. Buffalo라는 브랜드가 꽤 괜찮았다. 유니클로나 베이직하우스같은느낌인데 인도 브랜드라 그런지 청바지 하나가 600~2000루피 (1200원~4000원)사이었다. 몇벌 입어보고 청바지 하나를 다음날 샀다. 그날은 그냥 빈손으로 몰에서 나왔는데 저쪽에서 ‘지용오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지영이다. 허허 신기하다. 지영이랑은 항상 만나기로 해놓고 연락이 안된다. 근데 만난다. 레에서도 나는 레로 가고 그당시 홍수땜에 인터넷 전화 다 불통이라 지영이가 온다는건 알았지만 언제 어디로 올줄 몰라서 그냥 다녔다. 지영이는 원래 스리나가르로 들어와서 레 로 올 일정이었는데 스리나가르에 홍수가 나서 비행기를 레 로 바꿔서 왔었는데 둘다 연락도 안되서 그냥 다니다가 지영이가 도착한 다음날 아침 그냥 길에서 ‘지용오빠!’ 해서 돌아봤더니 있었다. 이번에도 다즐링에서 보기로는 했는데 딱히 연락이 안되서 뭐 알아서 하겠지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만났다. 우리는 4명이 묵고 있는데다가 그날 정탁이 친구까지 오기로 해서 지영이 방을 찾으러 한참 다녔는데 다즐링에 방 겁나 없거나 겁나 비싸다. 일단 다같이 저녁먹으러 가서 육개장으로 감동통일 하고 죄다 우리방으로 왔다. 그래서 4인실이 졸지에 도미토리가 되어서 기타치고 술마시고 담배 피우고 귤까먹고 재밌었다. 지영이는 나보다 일본어를 잘하고 나도 어느정도는 하고 찬울이도 좀 하고 정탁이는 우리랑 타로상이랑 같이 다니는 며칠동안 일본어가 엄청 늘었다 ㅋㅋㅋㅋ 타로상도 재밌는 사람이다. 초등교육부터 학교를 다닌적이 없다고 한다. 후지산 근처에 산다고 나중에 게스트하우스 할거라고 해서 놀러가기로 했다. 타로상은 일본인 특유의 배려와 상냥함은 있으면서도 일본인 답지 않게 배풀고 나누는것도 좋아하는 사람이다. 돈 아끼느라고 기차도 침대기차 안타고 잔뜩 끼어서 와야하는 제네럴 칸에 20시간 이상 왔으면서도 자기가 산 술 내가 더치 하자니까 막 됐다 그러고, 차도 막 사주고, 뭐 먹을것도 자꾸 사와서 자꾸 먹자 그런다. 술담배고기 다 좋아하면서 인도에 있는동안만은 힌두 파워를 받고 싶다며 채식만한다. 늦게 일어나는 줄 알았더니 5시쯤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서 담배를 한대 피우고는 해뜨는걸 보고 다시 들어와서 잔다. 마지막날에도 내가 일찍 일어나서 짐 싸려다가 타로상이 먼저 일어나있어서 함께 나가서 해뜨는걸 봤다.
“타노시이나~다즈링구”(즐겁네요~다즐링)
“이이나~ 오사케” (좋네요 술마시니까)
“아아 합피~ 합피다~”(아 해피하다 해피)
그리고 일본인인데도 나보다 게임이나 영화나 애니를 더 안봤다.
5.
다음날은 정탁이랑 또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초우라스타에서 동물원의 반대길을 따라 죽 걸었다. 티벳 난민센터에 가고 싶었다. 난민센터에서 물건을 사면 난민들을 좀 도와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딱히 누굴 돕고 싶다기 보다는 후리티벳 스티커나 아일랜드 가서 만날 사람들한테 간단히 선물할 거리를 볼까 하고 갔는데 이게 길이 좀 멀다. 교복입은 여고생들이 모여서 떡볶이 비스무래한걸 씹고 있는 함석으로된 작은 가게를 지나 지그재그로 가파른 언덕에 난 길을 따라 나있는 산촌마을을 걸었다. 마을길은 예쁘고 사람들은 인도 여느지역처럼 우리에게 뭘 팔려고도 하지 않았고, 신경쓰일만큼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프랜드 프랜드 하며 손을 내밀지도 않았고, 위치컨트리? 하면서 쓸데없이 말을 걸지도 않았고 뭘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쟤네뭐야?’ 하고 자기 할일을 했다. 그리고 우리가 손을 모아 인사하고 뭔가 물어보면 웃으면서 친절하게 답해줬다. 어떤 면에서도 지나치지 않는 너무나 적절하고 적당한 행동들. 왜 이런 당연한게 반가운 걸까.
길을 잘못 들었나 했지만 (잘못들기는 했다) 결과적으로 더 좋은 길을 갔다. 우리는 난민센터로 주위에 있는 산비탈의 길들을 죽 돌아 평화로운 마을들을 전부 구경하고 난민센터로 간뒤 원래 난민센터로 향했던 더 빠른길을 통해 금방 돌아올 수 있었다. 썩 괜찮은 산책길이었다. 구슬치기 하는 아이들, 바람개비를 돌리던 아이들, 떡볶이를 먹는 여고생들과 기도를 올리는 힌두교도들, (참 여기는 동양인인데도 사리를 입고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그것도 재밌다. 반대로 얼굴은 인도사람인데 시킴사람처럼 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티벳난민센터에서 빨래하던
아낙과 지팡이 짚은 할머니와의 짜시델레 (티벳인사말), 난민센터에 있던 티벳 여자아이들이 쎄쎄쎄하는걸 본것도 재밌었다.
우리 푸른하늘 은하수랑 비슷해보였는데 좀 단순하고 영어로 한다.
“Ice cream man, Ice cream man, Give me an ice cream!”하면서 시작해서
“Where is money?”
“In my pocket”
“Where is pocket?”
“In my jacket”
“Where is jacket?”
“In the Tibetan” (?)
“Where is Tibetan?”
“In the China”
막 웃으면서 하는데 여기서 무척 슬펐다 근데 다음에
“Where is China?”
“In the Japan”
읭?
뭐지 ㅋㅋㅋㅋ
민족의 설움이 서린 게임인줄 알았는데 그냥 아무말이나 되는데로 하는거였나 아니면 일본이 중국에 침략했던 역사를 비판적으로 드러낸것인가.
뭘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살 것은 없어서 그냥 작은 티벳 악기 팅샤 를 하나 샀다. 치면 당연히 팅~ 하는 소리가 샤~하고 난다.
첫날 저녁먹다가 중국인 남자 한명을 만났었는데 그 쵸키네 에서 나중에 중국인 세명과 함께있는 그를 봤다. 그 중에 한명이 “한국인이세요?” 해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한국말 잘하는 중국인은 정환이 말고 처음이었다. 그냥 한국 사람으로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얼굴도 스타일도 완전히 스타일나쁜 한국인같은 티를 팍팍내는 그 남자는 전주에서 2년을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전주사투리를 겁나 썼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어째 말투가 귀에 익다 싶더라니, 전주사투리, 그것도 겁나 심하게 쓰는 중국인이다. 하중이형말투 있잖아 ㅋㅋㅋ 말 겁나 빠르고. 아 전수관 가고싶네. 하중이형 농악 유네스코 등재되서 파리에 공연하러 가셨다는데 므째입니다.
6
다즐링에 오기 전 마을인 굼(Goum)까지 가는 토이트레인을 타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나는 델리로 가야하는데 기차티켓은 웨이팅리스트에 올라가 있고 아직까지도 웨이팅 3번이 안풀렸다.
음 이게 뭐냐하면 인도에서 기차티켓을 예매할때 만약 원하는 날짜에 자리가 없으면 웨이팅 티켓을 발급해준다. 웨이팅 티켓은 출발하는 시간까지 다른 사람이 예약을 취소할경우 나의 순서가 하나씩 올라가는데 이걸 인터넷에서 2~3시간마다 갱신해서 확인할 수가 있다. 만약 출발전까지 내 순번이 안오면 그전에 역에 가서 환불을 받아야 하고 누군가 취소해서 내 순서가 돌아오면 나는 바로 그 자리에 앉을 수 있게되는 시스템이다. 나는 바라나시에서 다즐링으로 오는 19일 무갈 사라이 역에서 24일 뉴 잘페구리(다즐링으로 가는 관문지역)~델리 기차표를 웨이팅 리스트 35번으로 끊었다. 35번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다음날 20일이 되니까 웨이팅 3번으로 떨어져서 충분히 24일까진 되겠지 했는데 23일이 되도록 3번에서 줄어들지가 않는거다. 나는 몹시 불안해져있다가 그날 아침 티켓을 꺼내보고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영어를 잘 못하던 무갈 사라이 창구 직원이 나한테 준 웨이팅 티켓은 20일 출발하기로 되어있는 티켓이었다…… 그러니까 20일 3번이후로 웨이팅이 줄지가 않지;;;;
당장 다즐링역으로 달려갔다. 이제는 비싼티켓이든 뭐든 무조건 구해야 델리로 가서 비행기를 탈 수가 있다. 하루만 늦어도 위험하다. 여차하면 국내선 비행기를 타야 할 수도 있는데 그럼 돈 10만원 깨진다. 일단 갔다. 웨이팅티켓은 날짜가 이미 지나버려서 환불이 불가능했다. 1600루피 안녕. 그래도 다행히 24일 델리까지 가는 기차표가 딱 한자리 남아있었다. 드물게 친절했던 시킴계 창구직원은 “You are lucky!”를 연발하며 유쾌하게 티켓을 끊어주었다. 하하 다즐링까지 올 때 고생한거 생각하면 뭐 이정도는 아무것도아니다 싶기도 했다.
1600루피를 낭떠러지 아래로 조용히 흘려보내고 곧 나머지 친구들이 역으로 다 왔다. 토이트레인을 타려고 했는데 왕복 무려 400루피나 한다. 240인줄 알고 왓는데… 우린 다들 안타기로 했다.마치 절벽곁이 가파른 산위에 위치한 다즐링 역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우리가 타야했던 토이트레인이 곧 출발했다. 초미니 사이즈이지만 진짜 증기기관차인 토이트레인은 기관사가 진짜 보일러에 삽으로 석탄을 퍼넣어서 앞으로 나아갔다. 내뿜는 엄청난 수증기를 보며 나와 타로상은 흥분해서 어느새 기차를 따라 달려가고 있었다. 진짜 증기기관차다! 대박 스티븐슨인가 뭔가가 탔던 진짜 증기기관차, 토마스, 스팀펑크, 우오 막 움직여, 김나와, 석탄들어가 저거봐! 스고이 스고스기루, 대단해 ,지나치게 대단해 한참 사진을 찍고 흥분해서 옆에 있던 다른 증기기관차를 살펴보다가 흥미가 떨어질때쯤 역으로 돌아왔다. 지영, 정탁, 찬울이는 낭떠러지 바로 위의다즐링 역사에서 모여서 구슬치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놀고 있었다.
철없는 어른들도 몇명 껴서 구슬치기 하는걸 한참 바라보다가 다같이 시장구경을 갔다. 시장에서 둘둘 하나하나씩 각자 물건을 살피다가 어느새 다들 흩어져서 나중에 방에서 만났다. 정탁이는 다즐링에 올라오기전 실리구리에서 지프를 탈때 운동화를 땅에 내려놓고 그냥 왔는데 그래서 인도에서 산 샌들만 며칠 신고 다니더니 발이 아프다며 약을 찾았다. 나는 몰에 가서 청바지를 600루피에 샀다. 12000원에 청바지라니 꽤 괜찮다.
방에 모여서 맥주한잔 나누면서 놀다가 나가서 다시 국밥집가서 밥먹고 ㅋㅋ 늦도록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일이면 나혼자 떠나야되서 아쉬운게 많았다. 다즐링이 너무 좋아서 좀 더 있고싶은마음 반, 빨리 아일랜드로 가서 새로운 것들을 해보고 싶은 마음 반인데 어쨌든 고생도 하고 돈도 좀 날렸지만 바라나시에서 계속 뒹굴거리는거 보다야 다즐링으로 오길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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