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04~09 우다이푸르
1.
우다이뿌르로 오는 버스에서 제법 추웠다. 다시 북인도로 향하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리고 계절도 어느정도 바뀌었구나. 새벽에 버스정류장에서 숙소까지 향할때는 온몸이 부르르떨릴만큼 추웠다. 우다이뿌르는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중의 하나다.
높은곳에서 보면 우다이뿌르는 카트만두와 비교할만큼 거대한 도시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머무르는 레이크사이드는 걸어서 한나절이면 충분히 구경할 수 있다. 외세의 침략을 별로 받지 않아서 인도에서 가장 사치스럽고 풍요로운 왕국일 수 있었던 우다이푸르의 레이크사이드는 도시전체가 대리석 조각인것 같은 착각을 준다. 호수 한가운데 있는 호텔겸 레스토랑인 레이크팰리스 부터 시작해서 도시전체를 내려다보는 화려한 궁전 시티 팰리스를 비롯해 레이크사이드의 모든 건물들은 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졌거나 하얗게 칠해져있다. 우다이푸르는 온통 대리석이다. 자이푸르의 암베르 성이나 내가 좋아하는 조드푸르의 메헤랑가르 성, 아그라포트등등 인도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왕궁들은 우선 방어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견고한 성 안에 왕족이 머무르는 궁전으로서의 기능이 있지만 평화로왔던 우다이푸르라 그런지 시티 팰리스는 ‘궁전’ 그 자체의 역할에 충실한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여전히 우다이푸르는 부유한것 같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 있는 성들도 막상 가보면 제대로 보존이 안되어있고 똥과 쓰레기가 가득하고 궁전이나 성은 텅텅 비어있는경우가 많은데 우다이푸르 시티 팰리스는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우다이푸르에 오면 방값이 비쌀까봐 걱정했는데 우리가 선택한 Lal Ghat Guest House 150루피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깨끗하고 편리한 도미토리를 가지고 있다. 각침대들이 커튼으로 독립되있고 침대 두개당 1개의 팬을 사용할 수 있으며 따뜻한 물도 잘 나오고 가트 바로 옆에 있어서 밤에는 훌륭한 야경을 즐길 수 있다. 치명적인 단점이라면 콘센트가 도미토리에 딱 한개밖에 없다는건데…… 뭐 감시카메라도 있으니 좀 불안해도 그냥 외출할때 전자기기를 노트북 충전시켜놓고 나가면 그럭저럭 쓸만하다.
방 안도 온통 하얗게 칠해져있고 하얗고 포근한 새 시트에 하얀 베게에 파란 커튼으로 도미토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예쁘다. 더불어 모기한마리도 없고 춥지도 덥지도 않다. 명실공히 이번여행 최고의 숙소.
첫날에는 그냥 딩굴딩굴 하다가 조금 나가서 있는 한국 게스트하우스에 갔다. 콘센트에 노트북을 충전하면서 블로그를 정리하고 싶어서였다. 근데 입구부터 한글이 잔뜩 쓰여있던 Ghanesha Guest House는 막상 인도가족이 운영하고 있었고 음식맛은 인도에서 먹은 모든 한국음식중 최악. 사장은 친절한척하지만 뭐 안먹고 있으면 끊임없이 이거 먹겠냐 저거먹겠냐 하면서 귀찮게 하고 나중에 나올때는 콘센트 이용료를 한시간에 30루피씩 받아서…… 나한테는 최악의 장소로 찍혀버렸다.
거기있다가 만난 한국인 정탁이라는 친구의 연락처를 받아서 저녁에 윤이와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정탁이가 한국사람들이 7시쯤 다른 식당에서 다 모일거라 그래서 가봤더니 7명 가까이 있었다. 다들 여행 초반인듯 했다. 여행이야기를 이리저리 나누고 나랑 윤이는 아무래도 막바지다 보니 할 말이 많아서 다들 좀 업되서 떠들었다. 좀 재밌어보이는 여자도 있어서 다음 목적지가 맞으면 동행하면 재미있을것 같았지만 맞지는 않아서 패스. 이제 나보다 나이많은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나보다 다 형같은데 다 27살이다.
우다이푸르는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도시같다. 맛있는 로컬 식당을 한군데 발견하고 시티 팰리스를 혼자 구경하고. 택시를 타고 투어를 갔다가 오고. 뭐 한게 많이 없는데 금방 지나갔다.
아 손금을 보러 갔다. 우다이푸르에 손금보는 사람이 있다길래 윤이랑 한번 가봤다.
2.
손금보는 아저씨는 좀 허경영 같았다. 윤이의 두 손을 펼쳐보라고 하고는 지금 부정한 기운이 많으니 먼저 씻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냥 윤이 손을 보고 자기는 옆에서 두손을 치켜들고 있다가 나가서 어딜 갔다가 오더니 어떤 느낌이 드냐고 어떤느낌이라도 말해보라고 했다. 윤이는 한참 떨떨해하다가 따뜻한거 같다고 (어딜봐도 대충 둘러댔다) 했다. 그러더니 또 나갔다오더니 똑같은 얘기를 하고 이짓을 5번가까이 했다. 거의 20분가까이. 그러더니 지갑에서 무슨 까만 잿가루 같은걸 꺼내서 손에 올려주고는 다시 덜렁덜렁하고 녹슨 내 머리카락도 못자를것 같은 커터칼을 가져오더니 윤이 손 앞에서 한번 휘두르고는 부정한 기운이 사라졌다며 마친내 점을 보기 시작했다. 뭐 지금 만나는 사람과 결혼할것이고 애가 몇이고 돈 많이 벌고 부모님 가져다 줄것이고 해외여행은 앞으로 몇번 더 할 것이며 뭐 한참 얘기를 했다. 그럴싸하다 생각하고 내 손을 내밀었다.
내손은 부정한 기운이 전혀 없어서 정화할 필요가 없단다. ㅋㅋㅋㅋㅋㅋㅋ 뭐야 귀찮은거 아냐? ㅋㅋㅋㅋㅋㅋ손을 보더니 아 너는 똑똑하다 하더니 윤이한테 중요한 결정을 나한테 물어보라고 하더니 나는 똑똑하고 돈을 많이 벌 것이다. 배우자도 똑똑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더니 끝났단다 ㅋㅋㅋㅋㅋㅋㅋ아 뭐야 너무 무성의한거 아냐? 나도 좀 자세하게 말해주라고 하니까 여행 얼마나 하냐고 하니까 뭐 해외여행은 뭐 엄청 많이 할 것이다그러더니 끝났데 ㅋㅋㅋㅋㅋ 뭐야 똑같이 250루피 주고 윤이는 한 30분 봐주고 나는 한 3분 봐주냐 ㅋㅋㅋㅋ
더이상 할말 없다는데 나도 할말 없었다. 나왔다.
아근데 그 아저씨가 점볼때 자기 안경을 벗어놨는데 엄청 빈티지하고 이뻤다.
평소 조드로의 안경을 좀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었던 나는 인도라면 이런 빈티지 안경을 싸게 살 수 있을것 같아서 안경을 찾아보기로 했다. 인도에서 안경점을 찾는 것 자체가 쉬운일은 아니지만 이곳 우다이푸르에는 선글라스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아서 생각보다 안경점이 많이 있었다. 안경사가 Optician인줄 처음 알았는데 여기는 Optician& Dentist가 많다. 안경사와 치과의사를 겸하다니 한국에서는 떼돈 벌었을 일이다. 다니다보니까 3~4군데가 보였다. 한군데로 들어가서 빈티지하고 올드한 안경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그냥 인도사람들은 아직 새물건들 좋아하니까 빈티지는 관심없이 헐값에 팔지 않을까 했는데 이놈이 눈치가 빠른놈이라 그런지 막 정색하면서 이건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컬렉션이라 그냥 보통 안경보다 더 비싸다면서 2500루피(5만원상당) 이하로는 절대 팔지 않는다고 딱 잘랐다.
그냥 그랬으면 됐는데 그중에 진짜 너무너무 갖고싶어서 미칠것같이 이쁜게 있었다. 저것만 쓰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달라보일것 같은느낌. 앞으로 모든 일이 스타일나게 돌아갈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정말정말 예쁜 빈티지 안경이었다. 나는 미친듯이 고민을 하다가 일단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부터 관광객들이 다니지 않는 골목부터 해서 안경점을 찾아나섰다. 한시간정도 외국인은 한명도 없는 시장한복판을 이리저리 헤메다가 포기하고 돌아가던 길에 작은 안경점을 하나 만났다. 들어가서 오래된 안경을 보여달라고 했다. 자꾸 반무테같은거 보여줘서 빡쳐서 나오려던 와중에 맘에 쏙 드는 금테를 하나 찾았다. 주인은 이건 유행이 지나서 아무도 안산다고 막그러고 나는 내가 찾는게 바로 그런거라고 하고 이게 내가 어제 상상했던 그림인데….. 그래서 맘에드는 금테를 250루피에 획득! 신이 났다. 하지만 어 제 그 안경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겅정색에 극단적으로 얇게 만들어진 해리포터 안경 같은데 완전히 동그랗지 않은 양쪽 눈이 심지어 조금 비대칭으로 생겼다. 무심한듯 예리하고 지적인듯 허술해보이며 낡은듯 세련된 내가 찾던 그 안경.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 결국 어제 찾아갔다. 당장 그 안경을 쓰고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에누리는 없었고 렌즈포함 3700루피라는걸 3300루피에 하기로 했다. 안경하나에 7만원…. 물론 한국에서야 안경에 그보다 훨씬 더 투자하지만 인도에서는 사실 쓸데 없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몇년 후를 내다보는 투자라고 생각하며 안경을 맞췄다. 근데 저녁에 안경을 찾으러 갔는데 안경이 ㅠㅠㅠ 안경이 ㅠㅠㅠㅠ 내가 도수가 높은데 인도는 한국만큼 압축기술이 좋지 않은지 렌즈가 겁나 두꺼워서 얇은 테의 샤프한 까만테두리 안에 하얀 렌즈의 테두리가 생겨서 뺑글뺑글 안경이 되버렸다 . 이래서는 부엉이잖아…….(풍덕이라면 당신이 생각하는 그 부엉이 맞다) 아뭐 뺑글뺑글도 귀여운 여자애가 하면 매력포인트지만 이건 확실히 아니다. 그리고 아름답지 않은걸 떠나서 어지럽다. 어지럽다고 하자 또 뻔한 뻥을 쳐댄다. 새안경은 원래 머리가 아프다 최소 24시간은 지나야 적응이 된다며. 그런게 어딧냐 원래 내안경이랑 똑같이 맞췄는데 도수를 올린것도 아니고 자기가 가공을 잘못해놓고 뻥치고 있다. 다음날 되면 괜찮을 거라면 100% 보장하겠단다. 그러면 안 괜찮을때 환불이 되냐니까 그건 절대 안된다며 안경 주문서에 no guarantee라고 쓰여있단다. 방금 100%게런티라며 이 호롤로야 !! 절대 환불안된다고 계속 버티더니 내가 이런 경우가 어딧냐고 작은돈도 아니고 절대 안된다고 하니까 환불은 자기 보스에게 물어봐야 된단다.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가게고 콜렉션이라메 이십숑구라대마왕아!!!나ㅓ혹;ㄷㅎㄷ;ㅐㅕㅠㅗㄷㄱ혖ㅎㅈ하ㅓ귣ㅎ패ㅑ1ㅕ4091ㅕ4901ㅕ 나와 옆에서 지켜보던 윤이는 둘다 완전 빡이쳤다. 그놈은 나에게 일단 내일 찾아오라고 내일 불편하면 어떻게든 해주겠다고. 하지만 괜찮을거라고 하며 나를 돌려보냈다. 혹시라도 익숙해지려나 하고 잠깐 쓰고 다녔는데 제대로 걸을 수도 없어서 차에 치일뻔 했다. 두통까지 오려고 해서 안경을 벗어놓고 다음날 다시 찾아갔다. 환불 받아야겠다고 하니까 보스한테 말해봤더니 렌즈값이 800루피니까 그 가격선에서 다른 안경테를 주면 안되냐고 했다. 뭔 개소리야 어차피 팔리지도 않는 빈티지 안경 콜렉션이 어쩌니 하면서 어제는 바가지로 2500에 팔아놓고 이번에는 800값에 하나를 더주겠다고 이게 누굴진까 개 호구로 하나. 아침부터 다시 빡쳤지만 나는 됐고 환불해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러면 500까지 환불해주겠단다. 헛소리하지 마라 800 다 내놔라. 하니까 보스는 어차피 환불안해주니까 자기돈으로 600까지 주겠단다. 내가 이건 기분문제라고 600을 받더라도 너는 우선 나한테 사과부터 해라고 하니까 나한테 닥치라며 자기한테 그런식으로 말하지 마라고 했다. 니가 먼저 닥치라고 해놓고 나한테 말 심하게 하지 마라는거냐 니까 말없이 렌즈를 안경에서 빼더니 800루피를 나에게 건내줬다. 결국 사과는 안한체. 휴 이제 괜찮다. 나 화안난다. 노프라블람이야. 2500 역시 사기지만 그정도 투자할 가치는 있는 안경테였다. 아일랜드의 렌즈압축기술이 좋기만을 바랄뿐.
3.
윤태 라는 친구가 여행사를 알아봐서 우다이푸르에서 가까운 쿰발가르 성과 라나푸르 사원에 다녀올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하루종일 다녀야 하는 투어였는데 주로 밤에 이동해서 길을 못보다가 낮에 택시를 타고 라자스탄의 언덕들을 누비니까 재미있었다. 우다이푸르 근방은 자이살메르처럼 사막은 아니고 관목과 풀, 그리고 활엽수들이 듬성듬성 나있는 산지다. 산지라고 해도 엄청 높거나 가파른건 아니고 꼬불꼬불 울퉁불퉁 걸어서 충분히 넘을 수 있는 구릉들이 끝없이 이어져있다. 그래서 차를 타고 달리면 좀 위험하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진짜 시골이라 소를 이용해 방아를 찢거나 밭을 갈고 있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쿰발가르 성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성벽이다. 만리장성 다음으로. 규모도 굉장하고 성 위에서 저 멀리까지 구릉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여기는 숲이 열대지방처럼 울창하게 안생기고 나무가 듬성듬성 나있기때문에 엄청 멀리서 적들이 와도 금방 알아챌 수가 있을 듯하다. 우다이푸르 시티팰리스와는 전혀 다른 오로지 방어를 위해서 지어진 성 같다. 대포같은 것도 많이 보존 되어있다. 인도사람들이 사극찍기시작하면 끝장날 것 같다. 이런 성들이 한두개도 아니고 대부분 보수작업이나 안내표지판따위도 없이 그대로 있는경우가 많고 성 주변의 자연도 그대로 보존 되있어서 전쟁영화촬영지로 최고가 아닌가 싶다. 실제로 쿰발가르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투의 무대였다고 한다. 쿰발가르에서 나와서 라나푸르 라는 인도 최대의 자이나교 사원으로 갔다. 자이나교는 불교보다 더 오래된 인도의 종교인데 힌두교의 갈래지만 딱히 신을 모시지는 않고 개인의 깨달음을 추구하며 생명을 극도로 중시하여 자이나교도들은 개미가 지나가도 차를 멈춘다. 아우랑가바드에서 추월차선에서 뱀나왔다고 급정거를 해서 뒤에서 오던 트럭과 충돌했던 택시기사 그놈도 아마 자이나 교였을거야…
오로지 대리석, 대리석으로 깎아만든 라나푸르 사원은 징그러울정도로 크면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자인교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바지를 입을 수 없어서 40루피를 내고 바지를 대여한다. 영어 오디오 가이드가 입장권에 포함되어있어서 괜찮다. 뭐 이름같은게 구별이 안되서 완전히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확실히 구경하는데 도움이 되긴 한다. 한시간 반동안 그리 넓지도 안은 사원 안인데 나갈 생각을 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이 사원은 동서남북 세개의 문이 가운데 네개의 불상(자이나교의 깨달은 사람들)으로 향해있고 둘래로 수백의 불상이 있으며 천장 기둥 한참 높은 돔지붕까지 세밀한 세공이 되어있다. 사막에 가까운 벌판 한가운데 있지만 안은 하루종일 시원하고 어떤 음식, 심지어 물조차 가지고 들어갈 수 없기때문에 깨끗하고 벌레나 동물도 하나도 없다. 바람이 통하게 다 뚫려있으면서도 바깥과 완전히 독립된공간이고 원래 건조한 지역이다 보니 곰팡이 같은것도 전혀 없이 완벽하고 쾌적하게 보존되어있다. 우다이푸르에 온다면 라나푸르는 꼭 들러봐야된다 진짜. 타지마할때 보다 훨씬 경이롭게 바라봤던것 같다.
4.
어제는 윤이랑 함께 있는 마지막 날이라 좀 센치했다.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윤이가 그전에 옆 박물관에서 하는 전통공연을 보러 가자고 해서 함께 갔다. 불타는 항아리를 머리에 올리고 춤을 추거나 항아리를 쌓고 쌓아서 9층까지 머리에 쌓고 춤을 추기도 하고 확실히 멋있었지만 필봉농악 보존회 공연을 늘상 봐온 나로서는 ‘뭐 자꾸 안맞잖아, 왜 다들 박자가 달라?, 왜 자꾸 틀려’ 뭐 이런 생각이 좀 들기는 했다. 공연은 우리나라 전통공연에 비해 한참 떨어졌지만 반대로 관객수준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났다. 함부로 플래쉬를 터뜨리거나 떠들거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도 없었고 다들 적절한 타이밍에 즐겁게 호응하며 공연을 즐길 줄 알았다. 물론 우다이푸르에 이런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중산층 이상이거나 인도문화에 존경심을 드러내야하는 외국인들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관객수준은 인도의 승리. 한편으로는 마음이 착찹하기도 하다. 나와서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오려니까 시간이 꽤 늦었다. 윤이는 아침부터 나한테 이별선물을 하나 사주겠다고 고르라고 했다. 근데 뭐 딱히 갖고싶은것도 없고 (안경이었지만 2500루피….) 그래서 별 생각없이 있었는데 안고르면 집에 안들어간다고 사주고야 말겠다고 했다. 시간이 늦어서 기념품점들도 거의 닫아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이거 어때요? 저거 어때요? 하는데 음 나 저거 필요없는데, 저거 별로야 하며 이러고 있으니 엄청 얄미웠을것이다. “나한테 선물하기 힘들어, 나는 취향이 너무 고급이고 사고싶은건 밥을 굶어야되더라도 꼭사, 안사고 있는건 너무 비싸서 안사는거고” 윤이는 자기 아버지 같다며 선물하기 힘들다고 답답해했다. 그럼 메모리카드나 샴푸같은거 어때 하니까 그런건 낭만적이지 않다고 선물할 수 없다고 했다. 갖고싶은게 없는 단호박이랑 내가 갖고싶은거 뺴고 사주려고 하는 단호박이랑 가게들 다 문닫은 시간에 선물고르러 다니니까 힘들다.
사실 어제 가죽노트를 사주려고 나한테 슬쩍 “이거 이쁘지 않아요?” 하고 떠봤는데 내가 “아 근데 내가 손으로 뭐 쓰는거 되게 싫어해” 라고 딱 잘라버렸고 길가다가 꽃남방 보고 내가 ‘이쁘다’ 하니까 “사요”하고 떠봤는데 내가 “짐이야, 이쁘긴 한데 여행하면서 못입지” 해버려서 빡쳤다며 속으로 욕했단다.
“야 남방 그런거 비싸”
“500까지 생각했어요”
“진짜? 완전 감동이다 나는 100짜리 샴푸면 되는데….”
결국 샴푸는 내가 사고ㅋㅋㅋ 숙소 안에 있는 기념품 점에서 예전부터 하나 있었으면 했던 야한 오프너를 하나 가지기로 했다.
올라가서 야경을 보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동안 다녔던 여행사진들을 다 다시 보면서 웃다가 잠에 들었다.
윤이랑은 거의 5주 이상 함께 했으니 지금까지 동행한 사람들 중에서도 최고 기록이다.
우연히 만났는데 알고보니 같은 지리산 사람이고 같은 목욕탕 다니던 사람이고 같은 중국집 가던 사람이고 그래서 반가웠다가 최인애 제종민이랑도 아는 사이라서 소름돋았다가, 다니다보니 사고방식이나 취향도 많이 닮아있어서 재밌게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서로 장점도 단점도 많이 보고 충고도 격려도 서로 많이 주고받을 수 있었던 좋은 동행이었다. 흐 동생생긴기분
아침일찍 윤이를 보내고 나니 기분이 묘하다. 오랜만에 혼자가 되기도 했고.
나는 오늘 밤에 기차를 타고 아그라로 가서 다음날 고락푸르로 가서 다음에 네팔로 바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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