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3~17 다시 바라나시
2014/11/13~17 다시 바라나시
1.
바라나시가 네번째고
다시 바라나시가 두번째다. 한번 여행중에 두번 가게되는 도시.
공항이 있어서 입국출국하는 델리 말고 그런 도시는 많지 않다.
바라나시에 간 이유는 단순히 동행을 구하기 위해서 였지만 그 안락함이 그리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라나시에서는 확실히 사람을 많이 만나게된다. 좁고 길이라고는 강따라서 하나 골목따라 하나 두갈래 길밖에 없으니까 특히나 뱅갈리토라 골목은 밥때마다 나가고 차마시러 나가고 기차표 끊으러 나가고 어디 가려고 나가려고 또 나가고 하루에도 몇번씩 좁은 골목을 왔다갔다 하다보니 봤던 사람들을 하루에도 몇번씩 계속 마주치고 좁은 골목에서 짧은 한국말(일본어가 더 많지만) 로 인사를 건네는 상인들도 며칠이면 눈에 익어버린다. 똑같은 생긴 개들이지만 어느 위치에 어떤 녀석이 귀엽고 착하고 사나운지 다 알게되면 어느새 바라나시에 있는건 여행이 아니게 되버린다.
‘여행자’의 생활방식을 ‘머무름’의 형태로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는 곳. 뱅갈리 토라의 사람들은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이 적고 친절하다. 그들에게 우리는 생계수단이자 친구. 가격을 바가지 씌우거나 사기를 치고 싸우게 되더라도 한번 헤어지면 그만인 다른 지역 상인들이나 릭샤왈라들과는 달리 바라나시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오래 머물고 거의 매일 얼굴을 보기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는 일을 다들 피하는 듯 하다. 터무니 없는 억지나 싸움의 요소를 줄이고 최대한 친근하게 대해서 식당에 한번 더 찾게 만들고 자기 가게를 한번 더 찾게 만드는것이 바라나시 상인들의 생존전략이다. 그래서 그들은 열심히 외국어를 배우고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능력이 되는 한에서 여행자들이 필요로 하는것들을 도와주려고 열심히들이다. 그리고 어지간해서는 싸움을 걸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바라나시에서 사기당한 호구들이나 위험 한일 당했던 사람들이 쌍수를 들고 무슨 소리냐고 할 지도 모르지만 종종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더라도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는 거다.
하긴 반대로 바라나시에서도 뱅갈리 토라 골목은 인도의 다른 도시에 비해서도 일찍 밤이 찾아오는 곳이다. 대부분 10시가 넘으면 모든 샵이 문을 닫고 숙소들도 9시 30분~10시를 아예 통금시간으로 정해놓고 있다. 그래서 밤에 밖에 다니면 사람은 없고 밤이 찾아와 사나워진 개들과 섬짓한 실루엣의 소들, 그리고 달빛도 들어오지 않는 좁은 골목의 어둠에 위축되기 쉽다. 가트에는 가로등이 밝게 켜져 있지만 술에 취했는지 마약에 취했는지 모른 인도 젊은 남자들이 무리지어 있는 가트에 가는것도 망설여진다. 종종 실종사건이나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바라나시 뱅갈리 토라 지역은 기본적으로 힌두교의 성지라서 금주가 원칙인데 여행자들을 위해서 멀리서 술을 구해다 주는 브로커들이 있다. 이친구들은 술과 함께 마리화나도 파는데 나같은 사람이 지나가면 하루에도 몇번씩 굳 퀄리티 굳 퀄리티 하면서 말을 건다. 근데 잘은 몰라도 이런 유통구조가 마피아와 연결이 되있는 경우가 많아서 마약이나 술을 구매하려고 하다가 시비가 붙으면 (무리하게 가격을 깎으려고 하거나 시비조로 이야기 하거나 해서) 조심해야 하는거다. 어쨌든 10시가 넘으면 여행자들은 대부분 각자의 숙소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날도 11시가 넘어서 바라나시 역에 도착해서 고돌리야까지 오니까 막상 숙소를 찾아가는길이 좀 겁이 났다. 낮이라면 눈감고도 갈 수 있는 훤한 길이지만 아무도 없는 밤에 뭐가 나올지 모르는 좁고 외길의 골목이나 종종 사람이 실종되고 하는 가트 길 어느쪽으로 가야할지 고민되었다. 가트에서 변을 당하면 진짜 답이 없으니까 그나마 나쁜놈이 나타나도 상대하기 좋은 골목으로 가려고 했다. 근데 골목입구에서부터 개가 엄청나게 짖으면서 나를 따라왔다. 뭐야, 이자식 왜이래? 안가? 보통 인도개들은 짖어도 확 돌아보거나 멀어지면 그만두는데 이자식은 집요하게 몇십미터를 따라왔다. 인도의 개들은 낮에는 주로 구석에 웅크리고 자거나 길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먹거나 여행자들에게 알랑거려서 음식을 얻어먹기도 하는데 밤만되면 지들끼리도 영역다툼인지 무서울정도로 짖어대며 싸운다. 그래도 사람한테 그러는 경우는 잘 없는데 작은 개지만 뒤에서 계속 짖으면서 따라오니까 의연할 수가 없다. 자전거 릭샤 아저씨가 릭샤를 타겠냐고 물었다. 릭샤를 타도 내생각엔 그 좁은 골목을 릭샤로 끝까지 갈 수가 없다. 하지만 이아저씨가 같이만 가준다면, 적어도 인도사람들은 개나 소를 무서워하지 않으니까 내가 쿠미코하우스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잠깐 흥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다른 자전거 릭샤왈라가 와서 쿠미코하우스는 멀지 않다며 릭샤를 탈 필요가 없다며 나를 구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아저씨한테 바짝붙어서 골목안쪽으로 들어갔다. 개가 나한테 덤비거나 소가 길을 막고 있을까봐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쿠미코 하우스에 도착할때까지는 아무일도 없었다. 하지만 진짜 고돌리야에서 개한테 쫒길때만 해도 골목으로 들어가지 말고 오늘 하루 이 근처에서 묵을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 했드랬다 ㅋㅋㅋㅋ
아직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게스트 하우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 루머가 계속 있는 쿠미코 게스트 하우스는 그닥 깔끔하지 않은 탓에 자유가 넘치는 도미토리가 가장 큰 매력이다. 아래층 싱글 더블룸에 사는 사람들도 밤이 되면 도미토리로 올라와서 삼삼오오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또 한층올라가면 갠지스 강이 한눈에 보이는 옥상이 있는데 물탱크위에서 초를 하나 켜놓고 기타를 치거나 이야기를 한다. 술한방울 안마시고도 여행와서 처음 본 사람들끼리 온갖 속 이야기를 터놓게 만드는 마력의 장소다.
올해 65세 쿠미코상은 젊은 시절 일본으로 공부를 하러 왔던 20세 연상의 샨티 할아버지와 결혼하여 인도로 건너오셨는데 당시만 해도 이방인이 낯설었던 인도에서 친척들 등쌀에 이웃들 텃세에 엄청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샨티 할아버지는 지금 치매기가 좀 있으셔서 항상 로비(라고 부를수 있다면)에서 앉아서 드나드는 게스트들에게 인사를 건내시는데 종종 내가 게스트인지 아닌지 햇갈리시는것 같다. 하지만 오락가락하시는 샨티 할아버지 사실 한시대를 풍미했던 저서를 쓰신 작가였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쓰신 책 뒷편에는 23세 시절의 쿠미코상과 샨티 할아버지의 사진과 함께 전 인도 총리 네루 와 찍으신 사진도 있고, 인도의 조지 해리슨의 스승이자 노라 존스의 생부인 전설적 시타르 연주자 라비 샹카르와도 친분이 있으시다고 하니 덜덜덜 이분 굉장한분
하지만 지금은 압도적으로 쿠미코 상의 매력이 우리가 다른 숙소로 갈 수 없게 만든다. 65세의 나이에 영어와 힌디와 일본어를 다 구사하시며 동글동글한 얼굴에 걸맞는 애교를 가지고 계신데 가격흥정할떄 폭발이다.
“쿠미코상! 햐꾸 루휘데 쿠다사이~(쿠미코상, 100루피로 해주세요!)
“햐쿠고쥬! (150!!) 하고 소리치시면서 두 손을 쫙 펴서 15를 그리시는데 ㅋㅋㅋㅋ 아 이건 동영상을 찍어 올릴 수도 없고 아쉽다.
다시 찾아갔을땐 도미토리에 손님이 들어선지 자신만만하셨다.
“쿠미코상, 잇카게츠 마에니 햐쿠니쥬닷다시, 오나지 후라이스데 데키룬데쇼?”(쿠미코상, 한달전에 120에 묵었는데 같은 가격으로 되지요?”
“다메요 니햐꾸! 쿄 와타시 츠요이! “ (안되 이백! 나 오늘 강하거든!) 하면서 팔을 들어 알통을 보이시는데 도저히 가격을 깎을 수가 없다 ㅋㅋㅋ
2.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옥상으로 올라가니까 미리 연락했던 정탁이와 함께 함윤이가 있다 ㅋㅋㅋㅋㅋㅋㅋ
우다이푸르에서 눈물을 이별을 한지 4일도 안지나서 바라나시에서 다시 만나다니 ㅋㅋㅋㅋ 원래 윤이는 조드푸르에서 푸쉬카르로 가야 했고 나는 고락푸르에서 네팔로 가야했는데 둘다 갑자기 계획을 바꿔 바라나시로 오는 바람에 같은날 같은숙소에서 만나게 됐다. 진짜 징글징글해서 쳐다보기도 싫다 ㅋㅋㅋㅋ
찬울이라는 키가 큰 20살 친구까지 네명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한참 웃다가 송학이형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옆건물 옥상에서 송학이형이 고개를 쑥 내민다 ㅋㅋㅋㅋㅋㅋㅋ 송학이형은 쿠미코 하우스 옆집인 한국인이 운영하는 레바 게스트하우스의 특등실 옥탑방에 머물고 있었다. 5년간의 세계일주를 위해서 나왔고 그중에 인도만 1년 가까이 잡고 계셔서 바라나시에 오래 머물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일 아침에나 만날 줄 알았는데 ㅋㅋㅋ 그렇게 일주일만에 세명이 다시 모였다. 이제 진짜 무슨 가족같은 기분이 든다. 바라나시에 사람들이 사실 많아서 새로운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각각 따로 다니고 새로운 사람들이랑 다니다가도 그냥 밥때되면 찾게 되고 안보이면 찾게되고 그랬다. 이제 우기가 끝나고 쾌적한 날씨가 이어지던 바라나시라 여행자들, 특히 한국 여행자들이 속속 모여들었고 이제 길에서 마주치면 한국인인지 아닌지 물어보는것도 은근히 어색할 지경으로 많아졌다. 여자들이 있는 그룹을 좀 찾아서 함께 다즐링 가자고 꼬시려고 했는데 잘 없었다. 며칠간 함께 어울린 사람들 중에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 사람들도 많지만 다들 처음만난것 치고도 서먹함 없이 재밌게들 다녔던 것 같다. 여행 초반인 사람들이 많아서 여행 막바지인 나와 윤이는 해줄 말도 많았다.
바라나시에선 그냥 뒹굴뒹굴하다가 시간이 다 간거 같아서 뭐했는지 잘 기억도 안난다. 한국인들이 모이는 치맥파티에 가서 스케이트보드 동호회 커플을 만났고 내가 막 꼬드겨서 다음날 아침에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갠지스강으로 뛰어드는 인생사진 한번 남겨보자 해서 여자친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아침일찍 다들 강가에 모였는데, 막상 수영도 못한다는데다가 숙취에 시달리고 있어서 강으로 뛰려는걸 다시 극구 만류하고 강가에서 스케이트 묘기를 하며 화보촬영을 한참 했었다.
도미토리의 일본인 친구들과도 친해져서 밤마다 이래저래 이야기도 많이 했었고, 단순한 카드게임을 하다가 빵 터져서 몇시간동안 숨막히게 웃기도 했다. 붓다의 초전법륜 현장을 보러 가겠다며 사르나트까지 비싼 택시비를 타고 갔다왔는데 먼지를 너무 마셔서 목감기에 걸렸다.
다즐링에 가고 싶어서 티켓을 계속 알아보러 갔는데 다들 티켓은 이틀후 것만 가능하다고 하는데 막상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다음날로 미루고 미루고 하다보니 정탁이랑 찬울이랑 같이 가기로 하기는 했는데 너무 늦어져서 막상 다즐링에서 머무를 시간이 3일 정도 밖에 안되게 생겼다.
바라나시 그리고 쿠미코하우스는 인도에 있는 집 같은 느낌이다. 일단 방값이 싸니까 여기만 오면 마음이 편하고 교통의 요지라 어디든 여기서부터 출발하기에도 좋다. 별로 할것도 없는데 별로 심심하지도 않다. 그냥 딩굴딩굴해도 시간이 안아깝고 열심히 구경을 다닐 수도 있다. 여행도 길어지다보면 지칠때가 있고 혼자임에 지치거나 여럿에 지칠때 바라나시에서는 내가 원하는 모든 상황을 만날 수 있다. 혼자인게 싫다면 금방 동행을 구할 수 있고 혼자이고 싶다면 조용히 혼자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리고 내일 다즐링으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