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10~12 우다이푸르~아그라~고락푸르~쿠쉬나가르
2014/ 11/10~12 우다이푸르~아그라~고락푸르~쿠쉬나가르
1.
우다이푸르 여행기를 업로드 하고 얼마 안지나 길에서 정탁이를 또 만났다.
정탁이도 아그라로 가기 위해 그날 표를 예매했는데 웨이팅이 안풀려서 원래 5시 쯤이었던 기차를 못타고 12시 기차를 타야했다. 나보다 2시간 가까이 늦었다.
어차피 두시간 차이고 10시 넘으면 릭샤를 타기도 쉽지 않아서 내가 나갈때 같이 가기로 했다. 내 기차는 10시 20분이다. 숙소에 가서 마지막으로 씻고 정리를 해도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 금발에 눈이 파란 예쁜 여자가 세명이나 도미토리에 들어와서 시원한 옷차림(*^^*)으로 짐을 풀고 있었다. 시크하게 하이~ 하고 콘센트 때문에 몇마디를 나눴다. 오늘 떠나기가 갑자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정탁이랑 숙소 옥상에서 식사를 하며 맥주를 한잔 마셨다. 우다이푸르는 모름지기 호수가 보이는 숙소에 묵어야 한다. 7시쯤 되니까 어제 봤던 전통공연 소리가 들려왔다. 공연 보러 갈때는 꽤 걸어간거 같은데 골목은 다른골목이지만 우리 숙소랑 바로 벽을 마주하고 있는곳이었다. 이제야 알았다니.
9시 30분쯤 정탁이랑 나가서 오토릭샤를 타도 우다이푸르 역으로 갔다. 우다이푸르는 아주 큰 도시지만 역은 아주 작았다. 기차가 주요 이동수단은 아닌 듯 했다. 아그라에 도착하면 오전 11시 경인데 타즈마할을 한번 더 구경하자니 입장료도 너무 비싸고 (750루피) 피곤할것 같아 예전에 갔던 맛있는 로컬식당이나 찾아갔다가 오기로 했다. 밤에 탄 슬리퍼 클래스 기차는 쾌적했다. 10월에만 해도 기차를 타면 낮에는 찜통같고 밤에는 또 춤고 그랬는데 이제 그냥 쾌적하다. 기차에 타면 베낭위의 결속끈에 매달아놓은 담요와 데님 셔츠를 꺼내서 침대위로 올리고 베낭은 맨 아랫칸에 샌들과 같이 구겨넣고, 기타와 작은 백팩을 가지고 자리 위로 올라간다. 이어폰을 꺼내고 내용물로 울퉁불퉁항 백팩위에 수건과 데님자켓을 올려 푹신한 배게를 만든다. 그리고 기타는 위쪽에 달린 철망에 버클로 단단하게 고정시켜 공간을 확보한다. 그러면 장거리 여행준비가 끝난다. 노트북을 꺼내서 영화라도 볼까 했지만 시간이 늦어서 음악만 좀 듣다가 금방 잠들었다.
예정보다 조금 늦게 아그라에 도착했다. 아그라는 역시 싫다. 그러고보니 아그라가 세번째다. 3년전에 쥬리랑 륜형이랑 처음 오고 그 다음에 영주랑 오고. 내가 내린곳은 AGRA CANTONMENT 역인데 고락푸르로 가는 기차는 AGRA FORT역에 있어서 오토릭샤를 타야한다. 50루피 이상 안주리라 하고 나왔는데 외국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게이트에서 전부 백루피 백루피 이래서 그냥 다 물리치고 나왔더니 싸이클 릭샤가 50루피에 가겠단다. 뭐 혼자면 싸이클도 좋지. 싸이클릭샤가 타는 기분은 더 좋다. 일단 승차고가 높아져서 멀리 보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인력거의 일종이다 보니 묘한 죄책감과 동시에 묘한 귀족된 느낌도 있고, 뭣보다 오토릭샤는 시끄럽고 많이 흔들리고 바깥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이고 쑥 내밀고 있어야 하는데 싸이클 릭샤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잘 보이고 속도도 느리니까. 풍경을 구경하면서 혼자 이동하고 싶을때는 싸이클이 좋다. 그리고 싸다. 훨씬 힘들어보이는데 오토릭샤 가격의 반도 안받으니까 미안할정도로 싸서 돈을 더 주게 될 때가 많다. 다리도 가녀린 할아버지들이 울퉁불퉁한 길이나 경사면서에서 내려서 힘겹게 릭샤를 걸어서 밀어올릴때면 안쓰러워서 안절부절 못할 때도 있는데 바라나시나 아그라 같은 유타르 프라데쉬 주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넓은 면적이 전부 평야라서 대도시에 언덕이라고는 찾을 수 없다. 다행히. 인도 대부분의 자전거들이 딱히 기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싱글기어 쌀집 자전거인것도 기어 달린 자전거가 싸서 도 있겠지만 많은 지역이 그냥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기어같은게 별로 필요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한국 사람들한테 평야 하면 기껏해야 나주평야 김해평야지만 인도는 히말라야에 인접하지 않은 북부 대부분의 지역이 끝없이 이어진 평야니까 우리나라 의 몇십배의 면적이 작은 언덕하나 없이 평야로 이어져 있는거다. 장난 아니지.
아그라는 더럽고 복잡하고 사람이 많고, 인도 어느지역보다 인도의 단점들을 가득 가진 도시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수많은 호객꾼들이 몰려와서 관광투어를 해주겠다. 릭샤를 싸게 태워주는 대신 자기 친구의 가게를 구경해달라. 여자를 소개해주겠다. 마약을 가지고 있다. 암튼 미친듯이 귀찮게 한다. 하하 그래 이것도 인도지. 그동안 평화로운 휴양지에서 해맑은 사람들만 만나다가 와서 잠시 잊고 있었다. 다시 정신 바짝 차릴 차례다. 아그라 포트 역으로 가서 가방을 맡기고 여행자 레스토랑들과 호텔이 있는 타지마할 남문 쪽으로 갔다. 릭샤왈라 한명이 120루피를 부른다. 나는 어딘지 알고 있다. 50루피 아니면 안간다니까 오케오케 이래놓고 릭샤에 타니까 출발은 안하고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뭐라뭐라 자꾸 말을 한다. 안갈거면 나 걸어간다고 내리니까 또 불러서 타라하고 또 횡설수설한다. 사기를 치려면 영어라도 잘하라고!!!
화가나서 짤루(꺼져~)라고 소리지르고 내리니까 다른 릭샤왈라가 다가온다.
‘100루피-‘
‘50루피- ‘
‘좋아 그럼 대신 내친구의 가게에 들러줘. 아그라는 대리석으로 유명해, 매우 좋은가격에 살수 있…’
‘가게 안가고 50. 아니면 걸어간다. ‘
하고 걸어가는데 오케오케 하면서 따라온다. 사실 내가 걸어가던 방향은 반대였다;;
암튼 그래서 출발하는데 앞에서 계속 뭐라 뭐라 한다. 타즈마할 뒷편을 구경하려면 350루피에 하게 해주겠다느니, 다시 친구 가게에 가자느니 . 나는 자동차소리들때문에 반쯤 안들리기도 해서 그냥 어허 어허 하면서 아유 재팬 하면 예쓰예쓰 하면서 그냥 갔다. 중간에 결국 자기 친구가게 앞에 세웠는데 안간다고 소리지르니까 그냥 간다.
3년전에 인도에서 먹었던 최고의 음식. 그것은 아그라의 어느 로컬 식당에서 먹은 로티 였다.
인도빵 하면 보통 난을 떠올리지만 인도에 막상 여행와서 난을 먹을 일은 거의 없다. 참고로 나는 총 5개월 남짓한 여행기간동안 딱 한번 난을 먹었다.
티벳인들을 제외하고는 인도 어디서나 커리를 먹지만 남인도는 쌀이 주식이고 북인도는 밀이 주식이다. 북인도에서는 밀가루를 반죽해서 구운 로티(빵)을 주식으로 먹는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얇게 핀 다음에 가운데가 오목한 팬에 구워서 먹는 것이 짜파티Chapati 다. 이게 우리가 인도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인데 보통 사이즈에 따라서 한장에 5루피~10루피 정도 한다. 그리고 흔히 로티라고 하면 탄두리 로티의 약칭인데 짜파티와 같은 반죽을 탄두리(Tandoori)라고 하는 화덕 안쪽 벽에 붙여서 구워내는 빵을 말한다. 하도 탄두리 치킨 탄두리 치킨 해서 사람들이 탄두리 치킨을 줄여서 탄두리 라고 많이들 하지만 탄두리는 인도를 비롯해 이란, 티벳지역에서 넓게 사용하는 화덕의 이름이다. 보통 허리나 가슴높이정도로 올라오는 연탄난로같이 생겨서 흙이나 콘크리트로 주변이 발라져있고 석탄이나 나무장작을 넣어서 불을 땐다. 그 위에 바로 팬을 올려 스토브로 사용하기도 하고 탄두리 안에 양념한 닭을 통째로 넣어서 구우면 치킨 탄두리Chiken Tandoori, 꼬치에 끼워서 넣으면 치킨 티카 Chiken Tikka 가 된다. 로티를 구울때는 보통 반죽을 탄두리 안쪽 벽에 떡 하고 붙이는데 이게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으면서 점점 부풀어 오른다. 탄두리에서 구워낸 로티는 팬에 구운 짜파티보다 쫄깃하고 구수하다. 그리고 이 탄두리 로티를 숙성을 시킨 반죽을 이용해서 구우면 훨씬더 쫄깃하면서 크게 부풀어 오르게 되는데 이게 난Naan이다. 난은 보통 25루피에서 30루피까지 해서 로티나 짜파티보다 비싸기때문에 여행하면서 먹을 일이 거의 없다. 근데 막상 주문해보니까 싸이즈가 좀 커서 비슷한거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가게마다 다르니까. 암튼 나는 로티가 담백해서 좋다. 이얘기가 왜이렇게 길어졌나.
암튼 제일 맛있었던 로티, 간판도 메뉴도 읽을 수 없던 아그라 한 로컬 식당에서 양고기 커리아 함께 먹었던 그 로티 맛이 있혀지지 않았다. 그곳의 로티는 10루피였는데 다른곳의 3배이상 크기가 컸다. 기름기는 하나도 없으면서 약간의 소금기를 품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냥 생수를 마시면서 먹어도 기가막히게 맛있었다. 갖 구운 바게뜨의 속살에 기름기 없는 크루아상의 겉면이랄까. 만지는 느낌도 너무 보드람고 쫄깃해서 다들 극찬 했던 기억이 있다. 전에 왔을때 두번이나 그 가게를 찾고 자이푸르로 향하는 버스에서 먹으려고 신문지에 포장해서 갔었다. 자이푸르로 가는 깜깜한 버스 안에서 신문지 봉투안으로 손을 넣어 조금씩 찢어먹던 로티의 그 맛은 인도를 여행하며 먹은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다.
그 맛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가게가 온데간데 없다. 주변 다른가게들은 다 있는데 마치 거짓말처럼 가게가 흔적도 없는거다. 셔터가 내려간 문은 가정집으로 향하는 계단만이 보였다. 옆집 신발가게에 여기 레스토랑이 있지 않았냐고 물어봤지만 다들 원래 없다. 그냥 가정집이다 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길 건너편에는 식당이 많았다. 나의 직관적 기억력이 틀릴 리가 없는데 하면서도 기억에 있던 정확히 그 좌표에, 주변 거리 모두 다 그 모습 그대로인데 그 집만 달랐다. 멍 하다가 혹시 내가 길 건너 가게를 잘 못 기억한 건 아닐까 하고 길 건너 가게에 가봤다. 하지만 탄두리 자체를 가진 집이 한군데 밖에 없었고, 그곳의 양고기 커리는 맛있었지만 로티는 전혀 달랐다. 맛도 크기도 모양도. 좀 시무룩 해졌지만 어쩔 수 없지. 여행자 거리를 걷다가 와이파이가 될 것같은 레스토랑으로 들어가서 맥주를 주문했다. 한시 반이니까 9시 30분 기차를 타고 고락푸르로 갈때까지 아직 엄청 많이 남았다. 앉아서 책을 좀 읽고 있었다. 4시가 거의 다 되었을떄 정탁이가 아그라에 도착해서 내가 있는 곳을 찾아왔다. 정탁이는 내앞에서 식사를 하고 타즈마할을 가볼까 말까 하다가 구경하러 갔다. 나는 그 사이 아일랜드에서 연락이 와서 이런 저런 서류작업을 했다.
정탁이는 곧 돌아왔다. 앉은김에 그 식당에서 저녁까지 먹고 함께 기차역으로 갔다. 정탁이는 8시 30분 바라나시 행이고 나는 9시 50분 고락푸르 행인데 정탁이 기차가 심하게 연착이 되서 정탁이는 9시 30분쯤 출발하고 나는 10시쯤 출발할 수 있었다. 아그라 역은 엄청나게 사람이 많다. 그래도 그 와중에 웨이팅 룸도 찾아서 열심히 샤워도 했다.
2.
나느 고락푸르를 거쳐서 소나울리로 간 다음 바로 네팔 포카라로 가서 8월에 포기했던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고 갈 생각이었다. 다만 26일 혹은 27일에 비행기를 타야 하는 점과 네팔 비자는 17일까지인데 혹시라도 연장이 안되거나 연장을 위해 카트만두로 가야 할 경우의 시간 소비, 네팔에서 다시 트래킹용품을 구입해야 하는 비용과 혹시라도 트래킹을 갔다가 조난을 당해서 제시간에 아웃을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딱히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은 전혀 안하면서 늦어질 거 같다는 생각은 왜했을까) 걱정들이 들기 시작했다. 남들은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에 다녀오는데 5일이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이미 레에서 다른사람보다 유달리 고산병이 심했던 내 몸에 대한 불신도 스멀스멀 피어나고 그리고 무엇보다 갑자기 다시 국경을 넘는 이 모든 과정이 몹시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정탁이가 가지고 있던 가이드북이 눈에 들어와서 슥 펼쳤는데 마침 눈에 보였던 게 ‘꾸쉬나가르’였다. 꾸쉬나가르, 붓다가 열반에 든 장소. 사실 힌두교나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깨달음이 아니라 깨달음을 통해 모든 업보에서 벗어나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 다시 태어나지 않는 완전한 죽음을 맞는것, 멸하게 되는것=입멸=열반 이다. 대승불교란 출가해서 깨달음을 얻지 않아도 선행을 많이 하여 업을 씻어내면 열반에 들 수 있다 라고 말하며 승려가 아닌 사람들까지 챙겨주는 불교가 아닌가. 그러니까 불교를 공부하거나 불교에 귀의한 사람들은 엄밀히 “해탈을 얻기 위해” 서가 아니라 “열반에 이르기 위해” 귀의하는 것이다. 그 중에 “해탈을 통한 열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승려와 수행자들이고. 그러니까 사실 붓다가 깨달음을 태어난 룸비니나 ,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보다 진정한 의미의 불교의 성지는 꾸쉬나가르다. 전세계 모든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중생들이 추구하는 궁극의 상태 열반,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니까.
뭐 이런 거창한 의미부여를 하면서 사실 인도에서 가장 가봐야 할 곳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새로 계획을 세웠다. 고락푸르에서 꾸쉬나가르로 간 다음 바라나시로 가서 일행을 찾아 다즐링과 시킴 지역을 찾아가는 것이다. 다시 티벳의 향기를 느끼고 싶기도 하고 전혀 안 가본 곳에 가고 싶기도 했다. 어쨌든 포카라나 카트만두는 가봤으니까. 다즐링 시킴지역도 어차피 히말라야 고산 지대고 트래킹 코스역시 마련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남들이 안해본 경험을 할 수 도 있을것 같다. 요즘은 안나푸르나 트래킹은 지리산 종주 정도 느낌으로 흔해졌으니까. 네팔은 다음에 짧게와서 트래킹만 하고 가도 되니까. 인도만큼 비자가 까다롭지도 않으니까, 뭐 온갖 핑계를 대면서 코스를 틀었다.
그래서 일단 고락푸르에 가면 꾸쉬나가르로 갈 생각이었다.
고락푸르로 가는 기차는 난생 처음 타는 3A 클래스였는데 역시 클래스가 달랐다.
인도 기차는 우선 A/C 클래스와 Non A/C 클래스 나뉘고 1A(1st Air Conditioning), 2A, 3A, 다음에 SL(Sleeper), CC(Chair class), GC(General class) 등이 있다.
1A는 1등급 에어컨 클래스다. 에어컨이 나오는 1등객차. CC는 지금 타고 있는데 무궁화호와 비슷한 느낌의 푹신한 의자가 있는 칸이고 GC는 그 이름이 확실한지 모르겟는데. 침대없이 가로 의자만 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서거나 바닥에 앉거나 눕거나 해서 거의 가축을 싣고가는것처럼 보이는 클래스다. 기차역의 Waiting Room도 당이 출발하는 S/L이상의 티켓을 가진 Upper Class Passenger만 이용할 수 있다.
3A는 3등객차. 세로 두칸 침대와 가로 여섯칸 침대가 기본인 는 보통 S/L과 똑같은데 에어컨이 나오고 커튼이 있고 화장실이 꺠끗하고 콘센트를 사용할 수 있고 담요와 배게가 제공이 되고 바퀴벌레가 없고 청소를 실제로 한다……(S/L은 이게 다 반대라고 생각하면 됨)
그냥 S/L에 에어컨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그래 비싼건 비싼 이유가 있지. 인도는 진짜 비싸면 비싼 이유가 있는 나라다. 미지근한 음료수가 30루핀데 차가운건 35루피 달라고 하기도 하고 ㅋㅋ 암튼 감당안되는 호화시설에 나는 처음에 몸시 당황했다. 여기 탄 인도사람들은 나를 잘 쳐다보지도 않고 말도 걸지 않는다. 다들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다. 다들 좀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가 역시. 근데 뭐 엄청 먹는건 S/L 칸이나 똑같다.
내가 누운 칸 아래의 네명도 한 가족인지 아침부터 뭘 계속 꺼내서 먹어대기 시작하는데 그들이 내리고 나자 바닥에 엄청난 과자봉지 쓰래기와 비스킷 부스러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다 진짜) 가 남는다. 도시락 같은것도 사서 먹고 바닥에 다 버리니까. SL칸은 창문이 열리니까 창문 밖으로 다 버리는데 여기는 창문이 안열리니까 다 바닥에 버리는거다 ㅋㅋㅋㅋ 나처럼 종착역까지 가는 사람은 내리기 한두시간 전부터는 쓰레기 더미 사이에 휑 하니 앉아있다. 거기에 서비스정신같은건 눈꼽만큼도 없는 승무원들이 그때쯤부터 청소를 한다고 와서 내가 앉아있는 말든 쓸고 닦고 기대고 있는 담요를 빼앗아가버린다. 다음날 오후 3시가 다 되어서 고락푸르 역에 내렸다. 1시부터 고락푸르였는데 플랫폼에 진입안하고 2시간가까이 기다렸다. 이런일이 사실 흔하니까. 말이 연착이지 그 도시에 다 들어왔는데 바로 앞 열차가 출발을 안해서 플랫폼바로 앞에서 한두시간씩 못내리고 기다리는 게 대부분이다. 다음열차 출발준비에 30분쯤 걸리고 또 그러다보면 기차가 밀리고 밀려서 8시간씩 연착되는 기차도 생기는거다.
고락푸르 역은 플랫폼이 8개나 되는 거대한 역이었다. 사람도 엄청나게 많고 전부 인도사람이다. 그러고보니 올해는 중국, 인도, 네팔 죄다인구 무진장 많은 나라만 다녔다. 지금까지 마주친 인도사람이 지금까지 만난 한국사람 전부보다 많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백퍼 많을것 같다. 사람이 좀 듬성듬성 있는곳에 가보고 싶다. 여긴 너무 촘촘하다.
화장실이 가고싶었는데 이제 혼자다 보니 배낭을 어디 두고 다니기가 쉽지 않다. 역안의 화장실은 가방을 내려놓을 수 없게 더러울거고. 일단 배가 더 고프다 싶어서 역앞으로 나갔다.
“소나울리? 네팔 보더?” 하면서 수많은 택시기사들이 접근해왔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어쩌지 당황했겠지만 단호하게 다 뿌리치고 역앞으로 나갔다. 고락푸르 역과 버스정류장이 맞닿아있는 이 거리에는 작은 식당과 노점상이 엄청나게 많았다. 가게 하나당 2~3미터 폭 밖에 안되는 가게들이 거의 500미터를 늘어서 있었으니까 진짜 엄청나게 많았다. 한 가게에 들어가서 탈리와 닭고기 2조각을 먹었다. 맛있다! 배가 고파서도 있겠지만 매콤하니 내입맛에 딱이다. 당연하게 숟가락을 안주는 현지인 대접도 좋다. 고락푸르는 네팔로 넘어가기 위한 관문도시로 대부분 고락푸르 역에서 바로 버스를 타고 소나울리나 꾸쉬나가르로 가기 때문에 대도시임에도 관광상품이 하나도 없고 사람들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배를 채우고 나자 슬슬 걱정이 됐다. 꾸쉬나가르로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고 가이드북에 적혀있는걸 찍어오긴 했는데 말했다 싶이 “역앞”이라고 쓰여있던 버스 정류장이 거의 300미터 이상 떨어져있어서 찾는데 한참 걸렸다. 다행히 버스는 10분간격으로 계속 있었다. 그냥 여기 맞나 하고 가는데 아저씨들이 “꾸쉬나가르? 꾸쉬나가르? 하길래 낼름 가서 탔다. 화장실 간다는데 자꾸 말을 못알아듣고 어디가냐고 해서 내 뚤루(힌디로 고추)를 가리키고 “쉬!!” 하니까 막 웃으면서 다녀오라고 했다. 하지만 화장실 같은건 없었고 옆에 글자 그대로 ‘시궁창’이 있어서 대로변에 실례를 했다. 버스에 타자마자 인도 소년들이 부담스러울만큼 얼굴을 들이밀고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옆에 바싹 다가와 앉아서 처음에는 귀찮았는데 착한 녀석들이었다. 서툰 영어로 내 사진 보여달래서 핸드폰 사진 좀 보여주고, 아마 사진 보다는 아이폰5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인도에서는 지금 아이폰 4 쓰는 사람들이 꽤 잘나가는 축이니까. 자기 사진찍어달라더니 보내달란다. 딱히 잘 나오지도 않았는데. 뭐 힘들게 이멜로 사진 보내주고 한놈은 페이스북 친구 하자고 해서 페이스북 친구도 하고. 비노즈와 팡카즈 그리고 또 한명 있었는데 그놈만 페이스북 친구 하고 이름은 까먹었네. 비노즈가 길에서 파는 볶은 땅콩을 사와서 함께 먹자며 자꾸 권했다. 그러고보니 길에서 땅콩 딱딱한 껍질 채로 볶아서 많이 파는데 한번도 안먹어봤다. 하나씩 깨서 뽑아먹으니 고소하고 맛있다. 왜 심심풀이 땅콩이라고 하는지 알겠다 땅콩은 딱딱한 껍질이 있을때에만 심심풀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껍질을 일일히 창밖으로 버리는게 귀찮고 이미 닭고기와 커리로 배가 불러서 권할때마다 두 세개만 받아서 먹었는데 이놈들은 ㅋㅋㅋㅋㅋㅋ 그냥 먹고 옷에 바닥에 의자에 다 흐르게 냅둔다. 그리고 일어날때 자기 옷만 툭툭 털고 가버린다. 우리나라에서 그러면 기사아저씨 진짜 화나실거야.
3.
한시간이라던 꾸쉬나가르는 체감상으로는 3시간 정도 간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금방 해가 졌다. 끝없는 들판을 달려가는데 계속 뭔가 타는 냄새와 연기가 공기중에 가득했다. 이렇게 탁 트이고 넓은 평원이 전체가 연기가 가득하다니. 들판 곳곳에 불이 놓아져있었다. 아마 화전 인듯하다. 여기는 계절이 우기 건기 말고는 큰 의미가 없으니까. 남인도에서도 이쪽에는 새로운 모가 자라고 저쪽에서는 수확이 끝난 3모작의 논을 종종 봤는데 여기도 무슨 밭인지 몰라도 수확이 끝나고 남은 뿌리를 해충이나 쥐들과 함께 불에 태우고 새로 파종을 하는 과정인듯 하다. 고락푸르-꾸쉬나가르는 네팔 남부랑 3시간 정도거리 밖에 떨어져있지 않다. 따라서 8월 말쯤 갔던 네팔남부 룸비니 쪽과 거의 같은 지역인데 확실히 풍경이나 마을의 모습들도 거의 흡사하다. 전기가 잘 안들어오는지 길에들어선 움막같은 로컬 식당과 찻집에 사람들이 많았는데 다들 초를 켜고 있었다. 다들 초를 켜고 있지만 한밤중에도 참 붐볐다. 좀 더 가니까 밭 저 편에 여기저기 큰 연기가 나는 굴뚝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옆에 앉은 녀석에게 저게 뭐냐고 물어보니까 설탕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다. 나중에 낮에 확인한건데 여기는 사탕수수 밭이 엄청 많다. 사탕수수를 삶아서 설탕을 만드는 작업들을 들판 곳곳에서 하고 있는 거였는데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하긴 이 건조한 시기에 불씨가 퍼지면 온 들판이 다 탈테니. 암튼 화전이니 설탕공장이니 해서 꾸쉬나가르로 가는 길 1시간 내내 공기는 뭔가 타는 냄새로 가득했다. 자연에 누구보다 가깝게 사는것 같은데도 공기가 안좋다니 서글프다. 어두운 틈을 타서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자동차가 다니는 큰길가에서 똥을 싸고 있었다. 사방이 불밭이고 들판인데 왜 사람이 다니는 길가에서 똥을 싸는지 모르겠다. 그 똥은 다음날 찻길을 따라 걸으면서 끝없이 확인할 수 있엇다. 옘병 소똥 말똥은 이제 그냥 밟아도 마른거면 그러려니 한다. 새똥도 디우에서 한방맞고 우다이푸르에서 두번맞고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래도 사람똥은 솔직히 직접 보면 기분 진짜 별로다. 그리고 휴지도 안쓰는 인도사람들이 물도 없는 길가에서 똥을 싸고 뭘로 닦았을까 생각하니까 갑자기 으으……
꾸쉬나가르라고 내렸을떄는 완전히 깜깜했다. 버스는 금방 가고 차들이 꽤 빨리 다니는 큰 길에서 나는 멍을 떄리다가 대형 트럭이 빠앙 하고 바로 코앞을 스쳐가자 깜짝 놀랐다. 어디로 가야되나 싶다. 거리가 온통 깜깜하다. 뒤에서 흰 옷을 입은 아저씨가 나타나서 따라오라고 한다.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길 가는 사람인것 같아 따라 나섰다. 사원군의 대문같은 큰 문을 하나 지나자 작은 노점들이 잔뜩 늘어선 길이 길게 뻗어있었다. 노점들은 차, 볶음면, 구운 감자, 사모사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는데 역시 다 초를 켜고 있어서 거리자체는 사람이 많은데도 어두웠다.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금 긴장했지만 아저씨를 따라갔다. 아저씨는 자기가 이동네 우체국장인데 우체국앞에 티벳 사원이 있으니 거기 있는 숙소를 이용하라 했다. 한참 따라가면 너무 멀고 너무 어둡고 너무 아무것도 없어서 불안했지만 딱히 방법도 없어서 계속 따라갔다. 거의 600m가량 걸어서 한번 좌회전을 하고 또 200m 가량 걸었다. 아저씨는 오른쪽 우체국에 자기는 산다면서 그리 들어갔다. 나는 티벳 사원으로 들어가서 방이 있는지 물었다. 젊고 건장한 젊은 티벳 스님은 오늘 단체손님이 90명이 와서 방이 다 찼다며 길 건너편의 스리랑카 사원에 가보라고 했다. 다시 나와서 스리랑카 사원을 찾아갔다. 이게 그냥 골목길에서 이집 저집 찾아다닌것 같지만 여기는 사원 하나가 작은 아파트단지 만해서 사원 하나에 들어가서도 사람을 찾으려면 한참을 다녀야했다. 그리고 일단 다 불 꺼져있고. 스리랑카 사원은 철문이 잠겨있어서 흔들어보고 그냥 돌아 나오려는데 문이 열리더니 인도 할아버지 한분이 나왔다. 영어는 잘 못하는지 스님께 안내해줬다. 스님이 처음에는 방이 없다고 했다가, 한자리만 있으면 된다고 부탁했더니 방을 해나 내주셨다. 방은 많았는데 보니까 내가 묵은 방은 큰 공간을 작은 방으로 만들어놓은건데 안쓸 공간을 나때문에 쓰는것 같았다. 요컨데 나 하나때문에 한건물 전체에 전기를 넣어야 해서 꺼렸던것 같다. 덕분에 나는 공간을 편하게 쓸 수 있었다. 공용화장실 샤워실이지만 나 혼자 밖에 안썼다.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도 깨끗했다. 모기가 많았는지 아침에 일어나니까 나를 물다가 죽은 모기들때문에 시트에 빨간 핏자국이 있었다.
일찍 잤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바라나시로 가는 티켓을 확보해야했다.
4.
8시쯤 방에서 나와서 좀 걷다보니 금방 Paranirvana Temple (바라니르바나 템플)이 있었다. 어제 티벳 사원을 습격한 90인들의 정체는 라오스인들이었는데 아래위로 하얀 옷들을 입고 단체를 순례를 온듯 했다. 아직 동남아는 안가봤는데 가면 재밌을것 같다. 확실히 라오스 사람들은 한국인들과 생김새는 조금 다르지만 피부색은 거의 같다. 가이드를 동반한 한국 스님 서너분과 보살, 처사님들(ㅋㅋ)도 보였다. 열반상을 좀 가까이서 오래 보고 싶었는데 라오스 사람들이 열반상을 완전히 둘러싸고 라오스발로 찬불가 같은 걸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끝도 없이 열반상을 덮은 큰 천에 향수를 뿌려댔는데 그게 너무 고약해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나와서 큰길가로 나갔는데 어제 왔던 길을 다 돌아가는데 여행사는 두 세군데 밖에 없었고 다들 문을 안열었었다. 작은 로컬(밖에없었지만) 식당으로 들어가 뿌리를 주문했다.
아 아까 빵얘기하다가 깜빡했는데 “커리에 찍어먹는 밀가루 빵” 로서의 인도인들이 아침에 주로 먹는게 뿌리(Puri)다. 뿌리는 사실 짜파티와 거의 다르지 않게 반죽한 것을 좀더 작은 크기로 만들어서 기름에 튀긴 것을 말한다. 아침에는 큰 솥에 동시에 여러개를 튀겨내는 뿌리가 짜파티나 로티보다 빨리 만들 수 있어서인지 대부분 작은 그릇에 콩과 감자가 들어간 조금 매콤한 커리를 담아서 뿌리를 두 세개 담아서 준다. 길에서 서서 먹는 경우에는 바나나껍데기로 만든 일회용 그릇에 주기도 한다. 뿌리는 보통 튀기는 과정에서 가운데가 크게 부풀어올라서 빵빵해지는데 갖 건져낸 기름이 뚝뚝 흐르는 뜨겁고 빵빵한 뿌리를 손으로 조심조심 찢어서 구멍을 내서 뜨거운 공기를 빼내고 안 쪽면에 커리 콩과 감자가 들어가도록 퍼서 먹으면 맛있다. 가격도 보통 15루피 정도라 아침에 몇개든 먹을 수 있지만 보통 나는 뿌리 두세개와 커드(요거트) 하나 정도로 아침을 해결하는걸 좋아한다. 그나저나 꾸쉬나가르 뿌리는 인심이 장난이 아니다. 다른곳보다 사이즈가 좀 작기는 하지만 보통 3조각정도 주는 뿌린데 6~8개를 고봉으로 쌓아서 가져다 줬다 ㅋㅋ 대부분 뿌리와 함께 밀가루에 설탕을 엄청 넣어서 꽃모양으로 만든 번들번들한 도넛 같은것도 같이 먹는데 나는 단것을 싫어해서 이것은 전혀 먹지 않는다.
암튼 오랜만에 혼자다니니까 맛있는 로컬 음식들을 맘껏 먹어서 좋다. 일행이 있을땐 아무래도 좀더 번듯한 식당들을 찾게 마련이니까.
나는 인도인들이 꼭 한 두명씩 와서 간편하게 한끼를 후딱 해치우고 가는 이런 작은 식당들이 좋다. 대부분 미안할 정도로 싼 가격이고 영어를 잘해서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그냥 주문한 것을 가져다 주고 내가 혼자 먹고 있으면 또 다른 인도사람이 와서 앞자리에 앉고, 대충 눈인사를 하고는 각자 식사를 한다. 주인은 왔다갔다 하다가 내가 커리가 부족하면 말없이 한국자 부어주고 가고 고추나 양파를 달라고 하면 바로 썰어서 가져다 준다. 식사가 끝나면 테이블에 있는 물주전자를 가지고 나가서 가게 밖에서 손을 씻고 돈을 내고 나오면서 서로 떙큐 하면서 한번 웃으면서 가볍게 나온다.
식사후에 여행사에 갔는데 바라나시 가는 기차표를 끊어달랬더니 내일 걸 끊어줬다. 다시 하려니까 더 비싸단다. 이놈이 자꾸 횡설수설 하는데 못알아듣겠어서 그냥 다른곳에 가기로 하고 싸이클릭샤를 탔다. 걸어다니기엔 좀 먼길인데 릭샤왈라는 내가생각한것 보다 훨씬 싼 가격에 나를 데려다줬다. 아무도 손님이 없는 여행사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를 예매했다. 긴급티켓밖에 없어서 조금 값을 더 치렀다. 바로 다즐링으로 갈까 했지만 마침 티켓이 내일까지도 없었다.
니켓을 예매하고 숙소인 스리랑카 사원 앞에 한국 사원 ‘대한사’가 있길래 가봤다. 넓은 정원앞에 핑크색 연꽃이 가득 핀 연못이 있었다. 진짜 연못. 내이름의 연못 ‘지’자가 바로 이 연못이다. 가까이서 피어있는 연꽃을 직접 보기는 처음인데 예뻤다. 연화는 단순히 예쁘다고 할 수 없는 우아함과 고귀함을 가진 꽃이다. 한국 사람이나 스님은 안계시고 인도인 관리인 한사람밖에 없었다. 빤(입담배)을 씹느라 발음을 얼버무렸지만 한국말을 제법 잘했다. 나한테 언제가냐고 하더니 시간있으면 자기 가게 앞에 한국어로 글씨를 좀 써달라고 했다. 어 나 글씨 못쓰는데??
나갔더니 절 옆에 붙은 기념품 가게인데 위에 일본어로 이미 쓰여있었다. 써야할 문구는
님(neem) 치약 ,헤나,찬단향 염주,비누
이걸 한국인들이 알아보려나…… 님Neem은 아유르베다인가 뭔가 하는 나뭇잎인데 몸에 좋은 뭐 그런거고 헤나는 그렇다 치고 찬단향 염주 라니 ㅋㅋㅋ 찬단향은 인도의 향 이름인데 찬단이 신화에 나오는 이름인가 그렇거다. chandan tour도 있고 chandan restaurant도 있으니까. 근데 한국어로 찬단향 염주 라고 써놓으면 이게 염주인줄도 모를 사람들이 많을텐데. 뭐 암튼 시키는대로 슥슥 썼다. 예상보다 훨씬 엉망으로 쓰였지만 나느 얇게 싸인펜으로 그냥 써놓고 페인트로 덧칠하라고 하고 나왔다. 쓰고보니 ‘찬단향 염주’를 나도 모르게 ‘천연향 염주’로 써놨었다;; 이거 어쩌지 고칠 수도 없고…… 뭐 의역이다. 찬단이라면 누가 알겠어 이편이 알아보기 쉬우니까. 그 아저씨한테는 별말 안하고 그냥 인사하고 나왔다.
숙소로 돌아가 짐을 싸서 나와서 다시 략사를 탔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먼 거린데 더 싼 가격을 제시한다. 여기 아저씨들은 사기같은걸 모르나보다. 아그라나 델리의 속이 시커먼 아저씨들이 생각난다. 네팔 타멜에서는 200미터도 안되는 거리를 길을 몰라서 탔더니 300네팔루피(150인도루피)이나 달라고 했는데 여긴 족히 1.5km는 될것 같은데 20루피 달란다. 20루피 내고 죽 타고 가더니 큰길가에 세워주고 바로 버스까지 잡아준다. 고락푸르로 가는 버스가 내가 릭샤에서 내린지 10초도 안되서 내 앞에 섰다. 사람이 많다. 나는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에 기타와 배낭을 끌어안고 쪼그리고 앉아서 고락푸르로 왔다. 사람들은 친절하게 가방을 받아주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지 않는 지역에 가면 사람들은 영어를 잘 못하고 나를 더 쳐다보지만 관광지 사람들보다 더 말은 걸지 않는다. 그리고 인사를 하면 환하게 웃어주고 뭐든 도와주려고 한다. 관광객이 많은 곳에서는 항상 먼저 말을 걸어오고 뭔가 요청하지도 않은 도움을 억지로 주고 자꾸 자기가 친구라고 하고 한국인 친구 많다고 하면서 돈을 요구한다. 관광지의 약아빠진 녀석들을 잘 요리하면 가장 편하게 여행할 수 있긴 하지만 역시 조금 불편해도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이 정이 더 가는건 어쩔 수 없다. 오늘도 우체국을 찾기위해서 5사람의 적극적인 안내를 받고 결코 찾지 못했지만 ㅋㅋㅋㅋ 굳이 방향만 가르쳐주면 되는걸 데려준다고 하고 돈을 받아내는 녀석들보다 그냥 잘 모르는데도 어디든 가르쳐준 사람들의 마음이 더 좋다.
기차는 체어 클래스다. 전에 제너럴을 타본적이 있어 의자라 하면 딱딱한 의자일줄 알았는데 막상 타보니 에어컨도 나오고 무궁화호랑 비슷한 스펙이라 지금 몹시 쾌적하다. 이런데서 5시간이라면 얼마든지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