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2014/09/08 레 가는길
황지용
2014. 10. 29. 10:39
레에 도착하니 스리나가르에 큰 홍수가 나서 당초 계획했듯 레에서 스리나가르로 넘어가는것도 불가능 했고
무엇보다 레 전체에서 모든 인터넷이 마비되어있었다. 게다가 델리에서 산 유심은 라다크 지방에서 사용불가라는 이해불가한 규칙이 있어서 열흘동안 완전히 외부와의 연락이 단절 된 채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것은 도착한 날 써놓았던 레까지 가는 길에 관한 글이고 레에서 있었던 10간의 기록은 내일 뭉떵이로 간추려서 올릴 수 밖에 없을 듯하다.










1
AM1:00
약간 춥게 잘 자고 있었는데 알람에 깼지만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알람 두개 맞췄는데 망할 한개는 다음날 낮 12시 30분에 울리더라 왜 난 항상 그럴까
한참 뒤척이다가 겨우 일어났다. 레 까지 가려면 또 얼마나 오래걸릴지 모르는데 음악 들을 핸드폰도 가득 충전해놓고 나머지는 배낭으로 다 집어넣었다. 얼마나 추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가진 옷중에 제일 따뜻하게 입어도 냉장고 바지랑 여름내 입고 다니던 사실 속옷인 까만 얇은 반팔티에 네팔에서 산 네팔리 고어택스 바람막이 하나다. 포카라에 있을때 트래킹 준비겸 가격도 궁금하고 해서 등산용품점에 갔는데 고어택스 라고 사방에 적혀있길래
“이즈잇 리얼 고어택스?” 하고 물었더니
“예스, 네팔리 고어택스” 하면서 웃던 가게 주인이 생각난다. 근데 나중에 안건데 네팔에서 고어택스나 후리스 원단을 수입해서 옷을 만들기 때문에 네팔에서 파는 물건들이 죄다 노스페이스나 콜럼비아 짝퉁인건 맞지만 소재 자체는 진짜 고어택스가 맞단다. 근데 한국에서 2~30만원 호가할 고어택스 바람막이가 2000 네팔루피(2만원) 살만하지 진짜. 진짜 방수도 되고 겨드랑이 환기 지퍼도 있다니까?
그래봤자 바람막이는 바람막이다. 바람은 막아주는데 바람안불고 그냥 추운거에는 별 소용 없다 그냥 얆은 옷이지뭐 하하 고어택스라 통풍도 잘된데요
마날리는 저녁에도 쌀쌀했지만 새벽엔 더 쌀쌀했다. 컴컴한 길가로 나왔다. 내가 묵는 벨리뷰 호텔 앞 길가로 1시 30분까지 나와서 서 있으라고 차편을 주선해준 VIcky가 델리에서 새벽 1시에 전화까지 줬다. 세심한녀석 반하겠다. 그러고보니 여행오고 나서 통화라는걸 이녀석과 처음해봤네
냉장고 바지가 이제야 냉장고바지처럼 느껴지는 길가에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호텔 주인녀석은 내가 나오고 한참 후에야 나왔다. 원래 깨워주기로 했었는데 이쉑
1시 40분쯤부터 미니 버스 같은 승합차가 몇대 왔다갔다 하다가 내앞에 서서
"유 고잉 레?”하고 물어본다
“예쓰”
“유 해버 티켓?”
하더니 티켓을 보여주니까 자기네 차가 아니라면서 기다리면 올거라고 쌩 갔다.
그래뭐 두시에 오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몇대를 더 보내고 승합차 말고 지프가 한대 왔다. 상당히 쾌활해 보이는 드라이버 한명만 타고 있었는데 와서 내 티켓을 보더니 또 그냥 한참 올라갔다. 그 다음에 다른 차가 왔다. 얘네가 내 티켓을 보더니 막 전화를 한참 해서 이것저것 얘기하더니 나한테 이차는 아닌데 곳 올거고, 그냥 갈 수도 있으니까 지나가면 니가 세워서 티켓을 보여주란다.
이놈들이…… 그렇게 2시 20분이 다 되어서야 아까 날 지나쳐 올라갔던 쾌활한 드라이버가 내려오더니 나보고 타라고 했다. 지프는 맨 앞에 두자리, 중간에 세자리, 뒷쪽에 세자리가 마련되있었는데 나보고 맨 뒷칸을 다 쓰라며 배낭을 한쪽에 넣고 누워서 릴랙스 하다가 아침이 되면 뷰가 시작될 것이니 지금은 쉬라고 했다. 그래 피곤한데 잘됐지뭐 하고 자세를 잡으려는데 내가 아무리 다리가 짧다해도 겨우 사람 세명 앉을 공간에 다리를 쭉 뻗고 누울 수 있을 리가 없다. 뭐 이래 저래 자세를 잡으려고 하는데 도저히 편한 자세는 안나온다. 그리고 드라이버는 운전도 매우 쾌활하게 했다…… 엄청난 급경사와 굽굽은 길과 중간중간 포장이 벗겨진 마날리 시내를 이래저래 굉장히 리드미컬한 코너링으로 속도를 거의 줄이지 않고 이동했다 마치 스노우보드를 타듯이. 굉장히 리드미컬한 주행을 하고 있는 스노우보드 끝에 가로로 누워서 잠을 잘 수 있을까
나는 원심력, 중력, 탄력, 속력, 인간의 인내력 등 많은 힘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시내를 돌면서 다른 손님들을 태웠다. 몸도 마음도 후덕해보이는 금슬좋은 중년 티벳인 부부와 상대적으로 젊은 티벳 여성 한명이 앞의 세자리에 앉았다. 나는 인사를 하기도 뭐해서 그냥 계속 누워있었다. 실제로 마날리를 출발할때까지 거의 1시간 반 이상을 차 뒤에 누워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날리를 떠나자 정말 아무것도 안보이는 어둠속에서 나는 머리를 부딧히지 않고 어떻게든 잠을 자보려고 소리없는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마날리 뒷편 산의 꼭대기까지 올라간 차는 이제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내리막을 달렸는데 이게 다 비포장이었다. 비포장도 그냥 비포장이 아니라 비가와서 축축하고 이래저리 깊게 패이고 쓸려내려온 바위들이 함정처럼 여기저기 자리잡은 비포장. 물론 이것은 다 내려온 다음에 아침에 확인한것이고 내가 그 길을 내려올때는 아무것도 안보였다. 마날리에서 차를 탈때만 해도 쌀쌀한 정도라 바람막이로 버틸 수 있었는데 이제 미친듯이 추웠다. 나는 암흑속에서 방수커버가 씌워진 배낭 하단에 그날따라 유난히 단단하게 결속해놓은 침낭을 꺼내느라 15분가량 낑낑대고서 침낭으 꺼내서 어떻게든 팔과다리를 자유롭게 하여 흔들리는 차량에서 스스로를 지키면서도 저릴만큼 추운 팔다리를 감싸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제일 따뜻한건 역시 누에고치처럼 침낭안에 쏙 들어가는 거지만 그럼 나는 그대로 지프뒷칸을 이리저리 튕겨다닐 터였다.
흔들림이 너무 심해져서 누운채로 30cm가까이 점프를 하고 유턴에 가까운 코너에서 온 무게중심이 머리로 쏠리는걸 몇번 경험하고 나는 자는걸 포기하고 자리에 바로 앉았다. 그리고 곧 점프하여 천정에 머리를 들이받았다.
하하 릴랙스는 무슨 릴랙스냐 그냥 차에 앉아있는거 자체로 긴장을 늦출수가 없다. 나는 다치지 않기위해 팔다리에 힘을 꽉주고 차 안에서 최대한 고정된 위치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이건 마치 디스코 판다…… 아니 디스코 팡팡이지, 디스코 판다 해외진출도 했다면서요? 디스코판다는 로드컴플릿에서 제작년쯤 출시한 카톡게임이다. 한붓 그리기라는 획기적인 아이템으로 초기에 꽤 인기가 있었고 지금도 매니아층을 유지하고 있다. 포코팡이 나오면서 ‘팡’이라는 쉬울거 같고 재밌을거 같고 누구나 할것같은 이름때문에 대중적으로 밀렸지만 포코팡보다 훨씬 재밌다.
암튼 바로 앉아서 보니 깎아지른 꾸불꾸불 진흙탕 고바위길에서 트럭들이 줄서서 멈춰있었다. 보니까 트럭한대가 옆으로 넘어져서 다른트럭들이 지나가기에 남은 길이 너무 좁았다. 우리의 쾌활한 드라이버는 트럭운전수들에게 몇번의 손짓을 하더니 얄밉고 쾌활하게 트럭들 사이를 뚫고 유유히 그 난관을 통과해서 나왔다. 고개를 거의 내려올때쯤되자 슬슬 해가 밝아오면서 그 엄청난 길들이 보였다. 십여대의 트럭이 여전히 멈춰있었고 내려오는길에는 사고나서 버려진 트럭의 흔적도 보였다. 첫번쨰 고개를 넘자 6시정도 되었나. 계곡사이 물이 흐르고 그옆에 좁은 평지에 군부대와 휴게소 보다는 기사식당 느낌의 쉼터가 몇군데 있었다.
2
그리고 처음으로 소변 볼겸 차에서 내렸는데 입이 딱 벌어졌다.
티비에서만 보던 차마고도, 짧은 관목과 키작은 풀만 바닥에 바짝 붙어 듬성 듬성 나거나 그마저도 없으면 바위와 흙이 전부인 히말라야의 고원, 끄트머리만 하얗게 덮인 민둥산들이 끝없이 펼쳐져있었고 내 바로앞에는 수백마리의 양떼가 풀을 뜯고 있었다.진짜 히말라야. 레 로 향하는 길의 출발점이었다. 뒤쪽으로는 군인들이 모여서 아침운동을 하는지 식사를 하는지 여기저기 줄지어서 이동을 하고 있었다.
레가 있는 잠무-카슈미르 지방은 분쟁중인 파키스탄이나 중국등 우호적이지 않는 나라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지역이기 때문에 레로 향하는 길을 따라 이런 군사시설이 엄청 많았다. 뭐 우리나라의 강원도인거지. 기사식당 쉼터는 나보다 어려보이는 두명의티벳 여인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작은 집 안에 조리기구와 테이블 한두개가 있고 주방 안쪽에는 이부자리가 있었다. 쾌활한 드라이버는 여기 사람들이랑 다 친근한지 식당으로 들어가서 앉았다. 드라이버가 농담을 하면 여인들이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한 여인이 차를 내와서 차를 마시고 다른 여인이 기름을 가지고 와서 드라이버가 차에 넣었다. 좀 나이가 있는 티벳 여인 두명이 더 와서 내 배낭이 있던 곳에 짐이 가득 들어가고 두 여인은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래서 맨뒷칸은 짐, 가운데 칸은 4명의 여인, 맨 앞에는 드라이버가 있고 한자리에 후덕한 티벳 아저씨와 내가 낑겨앉게 되었다. 드라이버는 이분들 20km만 가고 내리니까 일단 같이 가라고 했다. 뭐 나는 그런걸로 까탈부리는 사람은 아닌지라 흔쾌히 그러자 했다.
물론 길이 좋은 20km와 이런곳에서의 20km는 확실히 다르다. 초반이 도로 사정이 제일 안좋았던 것 같은데 계속해서 비포장의 울퉁불퉁한 길에 물웅덩이를 지날때마다 물이 앞유리까지 다 튀었고 그러고 나면 온도차때문에 습기가 차고 드라이버는 한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손으로는 창문을 닦아가면서 또 창문을 닦고나면 음악을 이곡 저곡으로 바꾸면서 잘도 아슬아슬하게 운전을 해나갔다. 놀랍게도 차에는 유에스비 를 꽂아서 리모컨으로 음악을 재생하는 장치가 있었는데 묘하게 90년~2000년대 우리나라 차들보다는 한참 앞서있으면서 블루투스로 재생되는 요즘 우리나라 차들보다는 쳐져있는 신기한 테크놀러지였다. 암튼 돌이 있어 몸이 방방뜨는 비포장 길에서도 드라이버는 평균70정도의 속도를 유지했기 때문에 나는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고 커브에서 내가 무게가 쏠려서 티벳아저씨가 드라이버를 밀치거나 기어스틱을 건드리게 될까봐 손잡이를 잡고 버티느라고 팔에 알이 배길 지경이었다.
3
곧 후덕한 티벳 부부가 내리고 내가 앞자리를 독차지 하게 됐다. 여전히 날아가거나 한쪽으로 쏠리지 않기 위해 손잡이를 꼭 붙들고 있어야 했지만 훨씬 편했다. 그리고 이때쯤부터 정말 말도 안되는 길과 풍경이 펼쳐졌다. 초반에는 계곡을 따라 계곡 중간을 깎아놓은 낙석도 많고 진흙탕도 많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갔고 나중에는 높은 산의 한쪽면을 지그재그로 한참 올라간 뒤에 산위의 더 높은 산들 사이로 위치한 넓은 평원을 가로지르는 물줄기를 따라 쌩쌩 달렸다. 침엽수가 주를 이루던 낮은 계곡에서 고원으로 올라가자 이제는 키작은 관목과 아주 짧은 풀들이 민둥산에 조금씩 자라있었다. 대부분의 산은 나무 한그루 없는 민둥산이었지만 500km가 넘는 이동기간 동안 산의 모양도 조금씩 계속 바뀌었다. 공통점은 나무가 없고, 아무것도 없고 높다는거. 그리고 꼭대기는 조금씩 눈으로 덥혀 있다는거. 지질학을 공부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납작하고 얇은 장석(이맞는지 모르겠다)이 층층히 쌓인 단층이 구부러져 들어올려진 산 아래에는 마치 일부러 가공한듯이 납작하고 평평한 돌들이 많았고 밝은 회색 바위가 주를 이루는 산에는 언젠가 히말라야 사진에서 봤던 붉은 풀들이 이끼처럼 자라있어 햇빛을 받자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바람과 빙하의 침식을 많이 받은것 같은 곳에서는 요르단의 사막 사진에서 봤던 것 같은 바닥이 보이는 U자형 계곡과 계곡의 벽을 이루는 절벽이 바람에 물에 깍여 마치 기둥처럼 마치 사람처럼 마치 건물이며 도시가 있었던 흔적처럼 늘어서 있었다. 나는 흔들리는 차에서 넊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대략 10시간동안. 한참을 입을 다물지 못하고 풍경을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꺼내서 대충 사진을 찍고 또 집어넣고를 반복했다. 대략 10시간정도. 그래 여전히 운전은 쾌활하고 도로사정은 좋았다가 안좋았다를 반복하고 차는 여전히 요동치고 있지만 나는 3일째 제대로 잠을 못잤지만 그저 그렇게 오래 차를 탄것 치고는 단 한시간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속해서 나를 놀라게 하는 히말라야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길의 끝에 사람이 사는 도시가 있다고?
그 엄청난 절벽들. 그 엄청난 산들. ‘깎아지른’ 이라는 표현이 정말 와 닿았다.
'깍아 지르다’ 신이 히말라야를 만들었다면 이건 정말 그냥 지른거다. 되는대로 막 지른거지. 저지르다 할떄 지른다 그거. 뭐 치밀한 생각 이런거 아무생각없이 “뭐 산 ? 까짓거 그냥 높고 크게 만들면 될거 아냐. 다 들어올려! 뭐 너무 평평하다고 ? 그럼 여기 확 깎고 여기도 확깍고 여기 좀 파고 됐지?” 뭐 이런식으로 막 “깍아 질러버린것”이 히말라야다. 진짜 대책없이 싸질러놨다.
4
오기전에 가이드 북에서 읽은 문구
마날리에서 자동차로 레 에 갈때는 해발 5000미터를 넘는 고개를 두개정도 지나게 되는데 고산이 익숙치 않은 사람은 고산병으로 고생할 수도 있다.
그것이 현실로 일어났다
하필이면 첫번째 고개를 올라가는 중턱, 해발 4300미터 지점에서 드라이버는 차를 세우고 아침을 먹자고 했다. 아침이라고는 하지만 11시 30분이 넘었었다. 전날 저녁 7시에 식사를 하고 그 사이에 짜이 한잔 밖에 안마셨지만 딱히 배고프다는 생각은 없었다. 차문을 열고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뭔가 다르다는게 느껴졌다. 나는 조금 어지러웠다. 그리고 똑바로 걷기가 힘들었다.
산 중턱에는 노랗고 큰 천막이 네개정도 쳐져있었는데 간단한 매점과 식사, 그리고 천막 안에 군대 침상 식으로 잠자리가 있었다. 엔필드 오토바이를 타고 라다크 지역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더 놀라운건 80% 이상이 인도 사람이었다. 좀 잘 사는 뭄바이 지역 청년들이 많은데 둘이서 오토바이 하나를 타고 모토싸이클 다이어리 처럼 다니기도 하고 혼자 다니기도 한다. 오토바이 여행자들이 천막안에서 일어나서 출발하려는것 같았다. 드라이버는 Zing Zing Bar라고 쓰여진 곳에서 밥을 먹으라고 했다. 갔는데 메뉴는 오믈렛과 매기Maggie(인도 카레라면) 밖에 없었다. 매기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조금씩 숨이 가빠오는 것 같기도 하고 자꾸 중심잡기가 힘들어지고 조금씩 두통이 찾아왔다.
매기는 설익어있었다.
고산병은 기압이 낮은 고산지역에서 산소부족으로 인해 어지러움, 두통과 근육의 무기력이 찾아오는 증상인데 딱히 치료법은 없고 사람마다 심하게 겪는 사람이 있는데 직접 겪기전엔 아무도 모른다. 나는 고산병같은거 왠지 하나도 없을 줄 알았지. 누가 날 봐도 그럴거 같아 보이지 않나. 고산병이라니 무슨 어울리지도 않는 소릴……
나는 몹시 연약해져서 차에서 꼭짝도 못하고 앉아서 다시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한참후 출발한 차는 거의 5000미터까지 더 올라가서야 고개를 넘었고 나의 두통은 점점 심해졌다.
이때가 12시 좀 지났었는데 이때부터 레에 도착하는 20시 무렵까지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좀 내려가면 괜찮은듯해서 두통을 겪는 중에도 부지런히 풍경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갔다. 뭐 따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차가 흔들려서 잘 수도 없으니
5
그렇게 또 계속 달렸다.
16시 30분쯤 두번째 쉼터에 들렀다. 거기도 해발 4000이 넘었을거다. 이놈의 드라이버는 꼭 쉬어도 높은데서만 쉰다. 여기서 점심 이라고 하기엔 저녁에 가까운 식사를 하고는 완전히 꼼짝도 못하고 불편한 자세로 누워있었다. 드라이버 녀석이 괜찮냐더니 자기도 감기 걸린것 같다면서 자기 손을 내밀었는데 잡아보니 불덩어리였다. 길도 불안하고 갈길은 아직 250km가 넘게 남았고 드라이버는 아프고 나도 아프고. 근데 이제 그런거 신경쓸 정신도 없었다. 그냥 가쁜 숨을 쉬며 두통을 끝없이 느끼면서 그와중에 창밖 풍경은 계속 구경하면서 정신없이 달렸다. 100km정도 남았을때 다왔다며 쾌제를 불렀는데 옘병 100km가 누구 애이름도 아니고 꼬불꼬불 산길에서 3시간은 더 가야 되는데. 언젠가부터 길의 포장상태는 좋아서 거의 시속 80정도를 유지하면서 달렸지만 이제 점점 해가 져왔다. 좁은 길에서 상현등을 그대로 켜고 달려오는 반대편 트럭들은 정말 무서웠다. 레가 30km정도 남았을때 나는 거의 죽을 지경이었고 눈을감고 시간을 보내고만 있었다. 드라이버는 귀에 이어폰을 꽂더니 빨리 달리는 와중에 어딘가로 계속 전화를 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끼익!
우리는 차도에서 벗어나 길 오른쪽의 언덕으로 10m가량 올라가서야 멈췄다. 바위도 나무도 낭떠러지도 가드레일도 없는 그냥 언덕이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암만봐도 그냥 정신놓고 전화걸다가 옆으로 센거 같은데 드라이버는 내려서 보닛을 열더니 브레이크 오일이 다됐다며 둘러댔다. 아 머리아파 죽겠는데 긴장을 늦출 수는 없고 어떻게든 빨리 레에 가서 아무 호텔이나 들어가 타이레놀 먹고 푹 자고 싶었다.
좀 더가서 뒤에 탔던 티벳인 여자 두사람이 내렸다. 한사람은 현지 학교 선생님인지 학교에서 내렸다. 짐내리는데 한참 걸려서 내가 내려서 도와줬다. 뭐 다들 고마워했지만 사실 나는 빨리 가고싶었을뿐이다. 거기서도 레 시내에 도착하기 까지는 30분가까이 걸렸다. 나는 드라이버에게 말했다
“Wow you have drived about 18 hours, you are amazing “
진심이었다. 사고날뻔하긴 했지만 잠깐 한눈도 팔수 없는 길을 18시간을 운전해오다니 굉장한 일이다.
드라이버는 오는 내내 전화번호를 교환하면 내가 돌아갈때도 데려다 줄것이고 담배도 구해주겠다고 했지만 헤어질때는 둘다 너무 상태가 안좋았는지 악수 한번하고 그냥 헤어졌다.
불꺼진 레 시내에서 괜히 택시타서 바가지 쓰기는 싫고 그저 가까운 호텔방을 찾아 이래저래 헤메다보니 거의 2km를 걸었다. 나는 정말 버틸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방을 찾아서 들어가 쉴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