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09/03~06
니혼진 미따이
1.
룸비니에서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에 내렸을때는 아침 6시
타멜에 가봐야 저렴한 아침식사는 찾을 수도 없기때문에 터미널에서 푸지게 먹고 가려고 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택시기사들이 달라붙는통에 마쁘랜 마 쁘랜 곤니치와 뭐야뭐야 하다보니 타멜로 가는 택시 안이다.
‘체리 게스트하우스’라고 일본인&한국인이 많이 가는 게스트하우스라는데 싸고 전통있고 친절하다고 해서 네팔짱이 좀 지겹기도 하고 해서 그리로 가기로 마음먹었었는데 굳이 택시기사가 또 어딘지 안다니까, 응? 그래도 어딘지 아는 놈 있을때 타자 싶어서 탔더니 결국 타멜시내와서 여기저기 길물어본다 이쉐끼
너 안다고 했는데 몰랐으니까 50루피 디스카운트야 하며 250루피만 내니까 멋쩍은듯 그냥 간다.
체리게스트하우스는 확실히 좀 내공있는 게스트하우스 같았다. 옥상에 예쁜정원이나 여행자들이 그린듯한 벽화가 가득했고 공동화장실이나 욕실은 열악한듯 하면서도 은근히 사용하기는 편하게 되있었다. 다만 내가 도착한 시간은 너무 아침인지라 열악+열악+열악 인데
첫째로 아직 내가 들어갈 방이 청소가 끝나지 않았고 둘째로 어젯 밤에 누군가 취해서 물을 밤새 틀어놓았는데 아침에 물이 안나온다는것 셋째로 지금 정전인데 9시가 되서 전기가 들어와야 물도 사용이 가능하다 는 것이다
허허 룸비니에서 엄청난 땀을 흘리고 밤새 버스에서 찌들어서 당장 씻고 한숨 자가다 인도대사관 가서 비자신청할랬는데 한 두시간 어디 누울데도 없다
옥상으로 올라갔다. 쇼파와 테이블 사이로 어젯밤에 거하게 한잔 한듯한 흔적들이 보인다. 마리화나를 피울 때 쓰는 도구들도 보인다. 앉아서 한두시간 때워야되지 하면서 기타를 꺼내서 몽롱한 정신에 뚱뚱거리고 있었는데 아래층에서 포카혼타스같은 복장을 한 여자가 올라왔다. 얼굴이 타서 까만건지 원래 까만건지 나이가 가늠이 안되는데 대략 30대 중반으로 추정,
오하요고자이마스~ (좋은아침입니다)하고 나도
오하요 고자이마스~ 하고.
옆에 사람이 생기니까 노래를 하다 그만두기도 그렇고 , 혼자있는것처럼 하기도 그렇고 그냥 웅얼웅얼 조용히 부르는데
갑자기 박수치면서
나이스 뮤직~ 하니까 민망하다.
소레와 기타데스까 (그거 기타에요?)
하이 타비노 타메니 (아네 여행용)
죶도 미떼모? (좀 봐도?)
하이 도조 (아예 여기요)
기타를 받더니 뭔가 친다. 밥말리를 친다. 노 워먼 노크라이 아는데 코러스 넣기가 좀 그렇다 아침이라.
어딜봐도 일본 사람인 남자가 올라왔다. 좀 멋있다. 말랐고 긴머리에 수염도 길렀는데 지저분하지 않고 자유로와보인다. 이 날씨에 털모자도 쓰고있다.
오하요~
오하요~ 아 다래노 기타데스까(누구 기타에요?)
아 카레노( 아 이분거요)
하면서 나한테 주는데 갑자기 온 남자가 나한테 뭔가 한곡 치라는 듯이 쳐다본다
그래서 Let’s get it on을 아주 점잖게 치니까 어디서 구멍난 젬베를 들고와서 박자를 맞추신다.
와따시와 XXX또 모시마스 (까먹었다 이름)
하이 와따시와 황 지용 또 모시마스
에에?
하이 칸코쿠진데스(네 한국인이에요)
젠젠 시라나깠다 (전혀 몰랐어요)
뭐 간단한 말 말고는 말을 별로 안했고 원래 억양같은건 잘 따라하니까
근데 희한하게 룸비니에 가기 전까지는 똑같이 다녀도 죄다 니하오 니하오 하면서 말을 걸었는데 갔다오고부터는 90%가 곤니치와 곤니치와 한다는거다. 사실 곤니치와도 잘 안한다 타멜 거리를 걷다보면 죄다 와서
제패니즈? 타마? 타마?
이러는데 첨엔 뭔가 했더니 타마가 마리화나;;;
그날따라 애들끼리 짰는지 한 200m 걸어서 밥먹고 오는데 한 일곱명이 연속으로 대뜸 묻는다
마이 프랜드, 타마? 타마? 아이 해버 굿 퀄리티
처음에는 뭔가 나에게서 자유로운 히피의 냄새가 풍기는구나 하고 뿌듯했는데 그날따라 너무 많이 들러붙으니까 좀 빡친다 아 됐다고 안산다고 내가 그렇게 약쟁이같이 생겼냐고 ㅋㅋㅋㅋㅋ
일일히 필요없다고 대답하기는 귀찮고 길은 가야겠고 하다가 완벽한 대응책을 찾았다
일단 타멜 시내를 걷는다
타마? 타마? 하면서 장사꾼들이 다가온다
나는 피식 웃으며 왼쪽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탁탁! 두들기고 살짝 풀린 눈으로 말한다
"Guess What?"
2.
잠도 들깬정신에 몽롱하게 걸어서 인도대사관에 갔다. 또 땀이 주룩주룩난다 아직 9시밖에 안됐는데. 비자센터는 9시에도 안열었다. 9시 반부터 철문을 열어줘서 사람들이 길에 줄을 서있다. 인도비자는 2주전 월요일에 신청했다. 월요일에 신청하면 자기들이 검토하는데 일주일 걸리고, 금요일에 가서 여권을 맡기면 월요일 오후에 받을 수 있어서 이래저래 10일이 걸리는데 나는 신청하고 일주일 더 늦게 간거라 오늘 맡기고 내일 받으면 된다. 인도 비자가 없으면 인도가는 항공권도 미리 못사기때문에 최대한 빨리 받긴 해야 한다.
여전히 느려터지고 불친절한 창구직원을 노려보다가 여권을 맡기고 나왔다. 털래털래 걸어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는데 이제 10시 좀 지났네. 늘어져라 게으름좀 피워야겠다. 씻고 빨래를 해놓고 누워서 밤되도록 영화를 봤다. 타멜에 짧게 있는 사람들은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위해 네팔에 오려면 들러야되는곳 쯤으로 생각하지만 막상 와보면 전세계 음식과 문화가 네팔사람들에게 묘하게 흡수되어있고 트래킹이나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부터 온갖 생활필수품과 고가의 카메라장비, 등산장비, 공예품, 그림, 에스닉 소품, 짝퉁 아웃도어 의류,전세계의 술과 칵테일재료, 수입식품, 화장품 등을 엄청 싼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쇼핑천국이다. 특히 화장품값은, 올리브영에서 7~8천원씩 하는 썬블럭 같은건 여기서 4~5천원이고 한국에서 얼마나 나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몇만원씩 하는 히말라야 화장품도 2~3천원대에 살 수 있다.
한국의 다이소 만한 가게에 들어갔는데 나름 백화점인지 과자나 음료, 식품에서 비롯해 온갖 생필품과 핸드폰 범퍼까지 다 있는 가게를 발견했는데 이정도로 다양한 수입식품을 취급하는 가게는 서울에서 찾기 힘들지 싶다. 현대백화점가도 이정도로는 없어 음. 여기 오래 살면 온갖거 해볼거리 많겠다 싶다.
작은 싸이즈 바게뜨 빵(55루피=600원정도)을 하나 사와서 방에와서 점심겸 먹는데 되게 맛있다.
저녁에 옥상에서 보드카 한잔 하려고 올라갔더니 일본인들이 몇명 나와있다. 또 처음보는 분은 내가 한국사람임에 놀란다.
다들 뭘 만들고 있는데 팔찌, 목걸이 이런거다. 여행다니면서 손재주 하나 있으면 시간 남을때도 좋고 그거 팔아서 여행도 더 할 수 있으니 좋아보인다. 저런게 하나 있어야 되는데 남들이랑 똑같이 팔찌 목걸이 만들기는 싫다.
일본사람들은 확실히 친절하다. “속내를 알 수가 없다”며 싫어하는 한국인들이 있지만 한국에서도 경상도사람이 전라도 사람들보고 “속내를 알 수가 없다” 고 하지 않나. 여행하다 어차피 잠깐 보고 마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는 사람이 훨씬 인상이 좋은건 당연한거다. 보자마자 대뜸 나이 물어보고 고향물어보고 말부터 트고 보는 한국 꼰대들 보다는 나이에 상관없이 친절하고 배려하는 일본사람들이 나는 좋다.
내가 보드카를 꺼내서 토닉워터를 섞으니까
얏빠리 세카이데 이찌방 오사케오 노무 …(역시 세계 최고로 술을 많이 마시는..)
하하; 노미스기쟈 나이까낫떼 칸지가 아루케도 네파루노 오사케가 이로이로 아루까라 젠부 노미따꾸 낫떼 (좀 너무 마시는것 같지만 네팔 술이 종류가 많아서 다 마셔보고 싶어요)
그렇게 한 두어잔 하다가 옆에서 말아주는 담배 몇모금에 금방 훅 가서 자러 들어갔다. 친절한 사람들, 담배 자기가 말아서 피우면 꼭 나한테 한모금씩 권한다. 전혀 피우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ㅋㅋㅋㅋㅋ
3.
비자를 받고 바로 다음날 비행기 티켓을 찾았는데 어째저째 밤 비행기가 됐다
비자받으러 갈때가 옥류관 다녀온 다음날 아침이라 숙취에 정신도 못차리고 가서 인도 비자용 사진은 새로 찍어야 한다는 말에 세수도 면도도 머리감지도 못한 상태로 사진을 찍었는데 꽤나 진솔하게 나온듯 ㅋㅋㅋㅋ
8시 45분 출발이라 6시까지 빈둥거리다가 일식당에 앉아서 밥먹고 손으로 이것저것 끄적이다가 책도 읽고, 인도에 가기 전에 남은 루피를 어떻게 할 까 하다가 서점에 가서 “시바 신의 아들들” 이라는 만화책을 샀다. 신화가 미국의 코믹스처럼 나오는데 꽤 재밌다. 나중에 공항에서 비행기 기다리며 읽었는데 몇권 더 사올걸 후회했다. 인도에서 서점에 한번 들러봐야겠다.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은 규모가 작아서인지 탑승수속과 출국심사를 마치는데 30분도 안걸렸다…… 그래서 2시간 반 전에 도착했는데도 시간이 어엄청 많이 남았다. 쇼파에 앉아 크리켓 중계를 보고 있는데 저앞에 앉아있는 네팔사람이 어디서 많이 본것 같다. 네팔사람은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으니까 그런거겠지 하고 넘기려고 해도 계속 앞에서 알짱거리는데 암만 봐도 그놈이다. 이건 닮은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똑같은 놈이다. 룸비니에서 나한테 없는좌석 표끊어준 트레블 에이전씨 그놈!! 이놈이 여기 웬일이래 인도가나. 나는 그자리에 앉아서 1시간 30분 정도 그놈을 째려봤는데 그놈은 나를 눈치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틀전이랑 완전히 같은 복장이었기때문에 알아챘을 가능성이 높다. 아는척은 안했지만 불안하게 흘깃거리는거 같았다. 너랑 나랑도 전생에 무슨 인연은 인연이었나보다. 알고보니 비행기까지 같이 탔다.
스페이스젯~ 에어라인 비행기는 되게 좋았다. 한시간이지만 최근 부쩍 많은 비행기를 탔지만 길지도 않은 내 다리를 쭉 펴고 앉을 수 있는 비행기가 대체 얼마만이었던가.
드디어 델리공항에 도착하자 3년전 처음 내렸을때의 설램과 벅참과 두려움같은게 같이 느껴졌다. 델리공항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3년전에 델리공항에 내리자마자 내가 맡았던 ‘인도냄새’가 이제 낯설거나 두렵지 않을 뿐이었다. 3년전에 인도에 도착할때 Arrival Card에 Adress 란이 있는데 내가 인도에 주소가 없으니 당연히 공란으로 제출했는데 입국심사 직원이 아무말도 없이 입국을 계속 거절했다. 땀을뻘뻘흘리면서 어떡하지 하다가 다른사람한테 물어보고 론리플래닛에서 맨 위에 있는 호텔주소를 써서 내서 겨우 통과했었다. 이번에는 당연히 예약도 안했지만 델리에 항상 머물던 주소를 써내고 여유잇게 통과하려는데 뒤에 중국인들 5명정도가 나랑 비슷하게 영문도 모르고 거절을 당한뒤 멘붕인거 같았다. 그래도 이번 입국심사 직원들은 좀 친절한 편이어서 나한테 쓰는법을 그들한테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근데 니들이 영어 안통하면 나도 이사람들이랑 말 안통하는데…… 영어로 말해봤자 못알아 들어서 그냥 견본으로 하나 적어줬다. 아무 호텔 이름이나 쓰라고 암만 말해도 모르길래 그냥뭐 Hotel Shiva , Paharghanj, New Delhi 라고 적어줬다. 인도에 젤 많은게 시반데 뭐 시바호텔 분명 있겠지.
이미 11시가 다됐다. 지금 빠하르간즈로 가는 전철은 안다닐 시간이고 택시비는 500루피 (=만원)가까이 나올것이고 지금 가봤자 빠하르간즈는 어둡고 비싼방밖에 안남았을것이고 그냥 공항에서 자고 내일 들어가기로 했다. 내려서 인도 유심을 구입해서 몇년만에 3G의 놀라운 속도를 누리면서 잘곳을 열심히 찾았지만 아 이게 함정. 입국심사장을 지나기전, 탑승게이트 부근이나 면세점 구간에는 바닥에 포근한 카펫도 깔려있고 쇼파나 일자형 벤치도 많고 아무데나 배낭 베게삼아 누워서 자면 될것같았는데 나오니까 차디찬 돌바닥에 은근히 춥고 앉을데도 별로 없다. 한참 헤메다가 벤치에 눕기로 했는데 자리 하나 하나가 떨어져있어서 허리나 등짝이 공중에 뜨면 고통스러워서 오래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12시부터 2시까지 쫒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그저 비몽사몽하다가 계속 음악만 듣다가 한 4시쯤부터 문닫은 까페 테이블에 앉아서 며칠간의 행적을 정리하다보니 이제 아침 5시 46분이구나. 이제 곧 전철이 다니겠지.
델리가 기온이 낮최고 32도 밤 최저 26도 던데 지금은 공항 에어컨때문인지 바람막이까지 꺼내입고 있지만 제말 덥지 않길 덥지 않길 덥지 않길 간절히 바라면서 마날리로 올라가는 기차를 바로 탈 수 있길 바라면서 이제 슬슬 뉴델리역으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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